현대중 물적 분할은 경영세습 안정화 위한 노동탄압

by 노돗돌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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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 7명 중 3명이 현대중공업의 물적 분할(존속회사가 신설회사 지분 100%를 가지는 방식)을 반대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 주식의 의결권 행사와 책임투자를 검토·결정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산하 기구다.

지난달 29일 현대중공업 주주총회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는 주주권행사 분과위원 9명 중 7명이 참석했다. 이 중 4명은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에 찬성했으며 3명은 반대했다. 참석 인원 중 반대한 위원이 과반에 미치지 못해 이날 열린 전문위원회는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을 최종 찬성했다.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위원이 해당 안건에 반대한 것은 그만큼 논란이 큰 사안이었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물적 분할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지만, 이에 대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 상당수가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로 최대주주 돈 안 들이고 지배력 강화

국민연금이 위원들에게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의 문제점은 △최대주주 자금투입 없이 회사 지배력 강화 △국민연금, 우리사주 등 현대중공업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배제 등이다. 

현대중공업은 5월 31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한국조선해양(존속회사, 중간지주사)과 현대중공업(신설회사)으로 물적 분할하는 의안이 승인됐다고 주장한다. 현대중공업의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대부분의 의사 결정권은 최상위 지배사인 현대중공업지주가 가진다.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의 비상장 자회사가 된다. 현대중공업 지분을 가지고 있던 우리사주 등 소액주주들은 중간에 낀 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지분만 유지할 뿐, 현대중공업지주와 현대중공업의 지분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루아침에 주식을 보유한 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졌다. 주주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볼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재벌의 편법 지배력 강화·경영세습 문제도 있다. 이번 임시 주주총회 결과가 유효하다면 현대중공업그룹 정씨 일가는 경영세습 체계를 공고히 한다. 현대중공업지주(30.95%) 등 그룹 측은 한국조선해양 지분 33.94%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최상위 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25.80%, 그의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이 5.10%를 각각 가지고 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2017년 4월 회사를 인적 분할(주주들이 신설회사의 주식을 지분율대로 갖는 방식)했다. 이 과정에서 정몽준 이사장은 그룹을 지배하는 최상위 회사의 지분율을 10.15%에서 25.80%로 높였다. 현대로보틱스(현 현대중공업지주)가 현대중공업의 자사주를 넘겨받으면서 신설 자회사의 신주를 배정받는 방식이다. 수평으로 회사를 자른 뒤 자사주와 신주를 교환해 돈을 들이지 않고 지분율을 높이는 것을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재벌의 편법 지배력 강화를 차단하기 위해 자사주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씨 일가는 2017년 4월 현대중공업 인적분할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배당금을 더 많이 받을 기반도 마련했다. 정기선 부사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을 매입(2018년 3월)했다. 배당금을 나눠 받을 토대도 구축했다. ‘조선 산업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던 현대중공업지주는 2019년 돌연 5년 만에 배당에 나섰다. 그것도 주주친화 정책을 펼치겠다며 2013년 대비 1475억 원 늘어난 2705억 원을 배당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우리사주 보유 동기 낮아져 
 
주주는 누구인가. 30.90%를 가진 정씨 일가가 836억 원을 가져갔다. 나머지는 국민연금(9.62%)과 일반 주주에게 돌아갔다. 우리사주(노동자)는 배당을 받지 못한다. 과거부터 현대중공업 노동자는 주력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의 우리사주를 보유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 인적분할에 이어 물적 분할하면서 지주가 시행하는 배당은 받을 수 없게 됐다. 최상위 회사에 속해 있던 현대중공업 우리사주가 사실상 두 단계 밑으로 떨어졌다. 노동자가 주식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몫과 회사에 영향력을 미칠 권리가 사라졌다. 반면 정기선 부사장은 안정적인 배당과 함께 지배력까지 확보했다. 아버지가 지주 지분 사라고 2018년 3월 3040억 원을 증여해 준 뒤 갚을 방도까지 마련해 준 셈이다.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이 확정되면 노동자의 우리사주 가치는 애매해진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비상장 사업 회사인 현대중공업이지만,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다. 사업 회사는 상장사가 아니어서 지분을 보유할 동기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고 중간지주사 지분을 팔고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을 사자니 우리사주 아닌 일반 주식 투자자가 될 우려가 있다. 

정씨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노동자의 영향력 감소. 현대중공업의 지배구조 재편 과정을 보면 두 사안은 맞물려 돌아간다. 일가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노동자의 법체계 내외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현대중공업의 물적 분할이 '정씨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안정적 경영세습을 위한 노동탄압'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아들에게 노조가 약한(또는 없는) 회사를 물려주려는 부성애인가. 

국민연금·산은, 재벌 편법승계 조력 

정씨 일가는 잃을 게 없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세계 각국 기업결합 심사가 승인되지 않더라도 임시 주주총회가 유효하다면 중간지주사는 남는다.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한 목적은 사라졌지만 결과는 남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정씨 일가의 지배력 강화는 취소되지 않는다.  

산은과 국민연금의 책임은 막중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승인받지 못한다면 재벌의 승계만 도와줬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을 최종 찬성한 대우조선해양 인수란 명분이 사라진다.

재벌의 전략은 생각보다 다채롭지 않다. 있는 법을 활용해 예측 가능한 파트너와 함께 예상된 범위에서 꼼수를 쓴다. 이를 줄일 법 개정은 필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분노와 끈기. 어떤 꼼수를 썼는지 끊임없이 찾고, 좌절하지 말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와 같은 일이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다른 재벌에서 벌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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