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사각지대 ‘플랫폼 노동’ ... 플랫폼노동연대 출범식 가져

by 너른바위 posted Mar 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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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과 대리기사앱 등 플랫폼의 중개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모인 플랫폼노동연대가 3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출범식을 갖고 있다. 플랫폼노동연대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앱과 대리기사앱 등 플랫폼의 중개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모인 플랫폼노동연대가 3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출범식을 갖고 있다. 플랫폼노동연대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노동법 사각지대 ‘플랫폼 노동’ 
전통 근로자와 일하는 방식 달라 4대보험·퇴직금 혜택 등 못 누려

회사원 김승욱씨(가명)는 최근 모바일앱 기반 인력 매칭 플랫폼을 통해 ‘투잡’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앱으로 앱디자인 일감을 받아 부업을 한다. 김씨는 “의뢰자와 손쉽게 만날 수 있어서 소소하게 돈을 벌기에 좋다”며 “고용자 입장에서도 정식으로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어려울 때 유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앱에서는 과외와 레슨, 디자인·개발, 건강·미용, 가구·목공예 제작, 여행, 법률·특허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다. 


이 앱에서 스페인어 과외 일감을 얻는 이지혜씨(가명)는 “(과도한 수수료를 받는 과외 중개업소와 같은) 중간단계가 사라지면서 소비자들도 가격상의 이점이 있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정당한 몫을 받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 앱에서 영어회화 강사를 찾기 위해 몇 가지 요청사항들을 보내자 곧 ‘견적서’가 여럿 도착했다. 일정과 금액을 협의한 후 ‘고용하기’ 버튼을 눌러 고용할 수 있다. 평범한 개인도 순식간에 ‘고용주’가 될 수 있다. 인력은 건 단위로, 시간 단위로 채용되고 해고할 수 있다. 앱을 통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의 사람을 쓰는 ‘휴먼 클라우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시·공간의 제약없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만큼의 컴퓨팅 자원을 쓸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정보기술(IT) 발달로 제약 없는 즉각적인 노동의 외주화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노동을 흔히 ‘플랫폼 노동’이라고 부른다. 고용정보원은 플랫폼 노동을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구한, 단속적인 일거리 1건당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면서 근로소득을 획득하는 근로 형태”라고 정의한다.

 

노동법이 품지 못한 노동 


플랫폼 노동은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 직종까지 경계 없이 확산되고 있다. 2016년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미국, 독일, 스웨덴, 스페인 등 15개국 전체 노동자의 약 30% 안팎이 플랫폼 영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플랫폼 노동 규모도 점진적으로 증가하는데 연구자들은 그 비율을 9~30%로 추정한다. 


플랫폼 기업은 각 분야에서 기존 산업을 허물며 성장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우선 플랫폼 노동 종사자 대부분은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과 퇴직금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산업화 시대 공장 노동자들을 전제한 노동 관련 법과 제도가 아직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플랫폼 모습을 띨 경우 직접 대면해 업무지시나 평가, 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노동법으로 고용관계를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보험, 퇴직금, 직업훈련 등 근로기준법 준수의 의무도 사라진다. ‘호출’로 고용과 실직이 분 단위로 이뤄지는 불안정성은 스트레스를 키운다. 사실상 노동시간의 연장이라 할 대기시간 동안은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전통 노동자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보호기준이 없는 일종의 사각지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맥도날드 라이더(배달원)인 박정훈씨(35)도 “전통적 의미의 근로자 개념을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같은 프리랜서의 경우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니까 전통적 의미의 실업상태라고 하는 것이 사실 확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의 또 다른 직함은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될 ‘라이더유니온’의 준비위원장이다. 그는 노동절인 5월 1일 노조 출범 총회를 열고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에는 지난 3월 19일 퀵서비스, 대리운전, 배달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실상의 노조인 ‘플랫폼노동연대’가 출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조 설립을 정부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를 조직할 근로자는 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가 있어야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노조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나 사용자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배달노동자들의 독립노조를 표방하는 ‘라이더유니온’은 5월 1일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총회를 열고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한다. 라이더유니온 카드뉴스에서 발췌

배달노동자들의 독립노조를 표방하는 ‘라이더유니온’은 5월 1일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총회를 열고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한다. 라이더유니온 카드뉴스에서 발췌



노동조합 결성권이라도 우선 인정해야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을 인정하고, 플랫폼 운영자를 노동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는 법령들을 일부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런 사례를 감안해 우선 노조법 2조를 개정해 플랫폼 노동자의 노조 설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종 플랫폼노동연대 위원장은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을 자칫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들이 사실상 해고되면 법적 다툼을 해야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완벽하게 노동자로 인정받으려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하나, 그 전에라도 노조 설립과 집단행동이 가능하도록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은 사용자가 빈번하게 변경되면서 누가 사용자인지, 누구에게 사용자적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애매하다”며 “개별 사용자나 기업을 떠나 업종별로 포괄적인 사용자적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근로자의 정의를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실업상태에 있거나 구직 중인 자, 그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하고, 사용자 개념도 확대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전통적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 사회안전망도 보완해야 한다. 산재의 경우 하청근로자라 해도 원청이 공동책임을 지도록 한 것과 같은 원리로 업종별로 공동의 고용보험 기금이나 산재보험 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 기업들의 매출액에 기반하거나 라이더들을 월평균 활용하는 정도를 연간 노동시간으로 환산한 만큼을 토대로 보험료를 걷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 현재의 고용보험 모델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당 15시간 이하를 일하는 노동자들은 4대보험의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플랫폼 노동은 시간이 아닌 건당 매출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득 기준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플랫폼 노동에 맞는 별도의 사회안전망 체계가 필요하다”며 “스마트팩토리(로봇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하는 자동화 공장) 도입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곳에는 로봇세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듯 플랫폼 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기존 산업을 구축하는 효과를 낼 때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기금으로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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