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청산가스’ 대기에 내뿜고도 20개월 숨겨

by 들소 posted Apr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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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대기오염 물질 감사
“당진제철소 배출 시안화수소
기준치 5.6배 초과 검출에
현대제철 문제없는 것처럼 신고”
여수산단 이어 또 오염물질 은폐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현대제철이 충남 당진제철소에서 기준치의 5배가 넘는 ‘시안화수소’를 배출하고도 관련 사실을 1년8개월이나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시안화수소는 대기오염물질 가운데 하나로 맹독성 물질인 청산칼륨(청산가리)의 원료다.


  22일 감사원의 ‘산업시설 대기오염물질 배출관리 실태’ 감사 결과 공개문을 보면,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2017년 2월20일 측정대행업체인 ㄱ업체를 통해 3고로 열풍로와 후판가열로, 철근공장가열로의 배출 대기오염물질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3고로 열풍로에서 특정대기오염물질인 시안화수소가 기준치(3ppm)의 5.6배가 넘는 17.345ppm으로 측정됐다. 후판 가열로와 철근공장 가열로에서도 각 7.618ppm과 1.952ppm의 시안화수소가 배출된 것으로 나왔다.


특정대기오염물질은 대기오염의 원인 물질이면서 저농도에서도 사람의 건강이나 동식물의 생육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물질을 이른다. 시안화수소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청산가스’라고도 부른다. 과거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 학살에 썼던 화학물질로 알려졌다. 위해성이 높아 연간 10t 이상의 대기오염물질을 내뿜는 대규모 사업장에서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 관리한다.


시안화수소 측정값이 기준치를 넘어서자 ㄱ업체는 해당 시료를 두시간 뒤 다시 측정해 불검출 결과를 얻은 뒤 ‘기준치 초과’와 ‘불검출’로 내용이 갈린 두가지 측정기록부를 각각 작성했다. 한달여 뒤인 2017년 3월14일에도 3고로 열풍로 시설에서 나온 시안화수소 농도는 3.702ppm으로 기준치를 넘었다.


두차례나 기준치가 초과돼 배출됐지만 현대제철은 시안화수소가 배출된 사실 자체를 감췄다. 대기환경보전법 등에는 배출시설 사업자가 허가받은 오염물질 외에 새로운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것을 확인하면 30일 이내에 시·도지사에게 배출물질 변경신고를 하도록 돼 있다. 시안화수소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애초 허가받은 대기오염물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그해 6월 ㄱ업체의 측정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불검출’로 작성된 측정기록부만 첨부해 다른 16개 특정대기오염물질에 관한 것만 충남도에 변경신고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10~12월 이뤄진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감사원 요청으로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현대제철 해당 시설에 대한 점검에 나서자 현대제철은 환경부가 다녀간 나흘 뒤에야 ‘38개 배출시설에서 허가받지 않은 오염물질인 시안화수소가 배출된다’고 충남도에 신고했다. 시안화수소가 처음 측정되고 1년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감사원은 “해당 배출시설에서 시안화수소가 배출되는 정확한 원인과 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고도 시안화수소 배출 기준을 맞출 수 있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것을 요구했으나 (현대제철은) 소명하지 못했고, 여전히 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데이터 측정 과정에서의 오류와 기술적인 부분을 감안해 불검출로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2017년에는 시안화수소를 새로운 배출물질로 변경신고하지 않았다. 이후 감사원과 충청남도가 의뢰한 국가공인기관의 측정치에서 미량이 검출됐기 때문에 변경신청 절차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오염물질 측정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관리는 현재 대행업체를 통하거나 기업이 스스로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대대적 손질이 필요하다”며 “굴뚝자동측정기(TMS)를 대폭 확대하고 지금처럼 1년치를 한번에 내놓을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공개해 사회적 감시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철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정책팀장은 “미세먼지의 국내 요인 가운데 사업장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차량이나 발전 분야와 달리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것엔 매우 소극적이었다”며 “미세먼지를 포함해 전반적인 대기오염 관리 체계가 필요하며, 배출량 기준이나 자가측정과 같은 제도상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앙정부가 감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기오염물질 관리를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재연 아주대 교수(예방의학·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대기오염물질 관리 업무 중 상당 부분이 과거 지방분권 과정에서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넘어갔는데 중앙정부가 어떻게든 감시·감독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감독권을 회수해 오든지, 지방정부를 추가 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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