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노동자 1만명은 왜 19년 만에 파업했나

by 도라산역 posted Jan 09, 2019

"단지 돈(성과급) 때문이라면 지점장과 갈등하고 언론에 뭇매 맞으면서 19년 만의 전면파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박홍배) 파업전야제에 참석한 30대 행원의 하소연이다. 지부는 8일 새벽까지 이어진 2018년 임금·단체협상에서도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자 이날 하루 시한부파업을 했다. 국민은행 노동자들의 파업은 2000년 주택·국민은행 합병 반대 파업 이후 19년 만이다.

지부에 따르면 7일 전야제에는 전국에서 상경한 조합원 8천500명이 참석했고 8일 파업에는 1만명이 동참했다. 지부 전체 조합원은 1만4천명이다. 국민은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선뜻 파업에 나선 것일까.

성과급이 쟁점? "성과급만 주겠다"고 한 쪽은 은행

국민은행 노사의 2018년 임단협 핵심쟁점은 임금피크제 도입 시기 연장과 페이밴드제(호봉상한제) 폐지, 엘제로(L0)로 불리는 저임금직군 경력 추가인정, 성과급 지급 네 가지다. 알려진 것과 달리 지부는 이 중 임금피크제·페이밴드제·저임금직군 문제에 힘을 쏟았다. 사측이 언론에 부각한 성과급 300% 지급 요구가 교섭 쟁점이 되리라고 애초 생각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지부 관계자는 "은행이 교섭 쟁점을 성과급 문제로 호도하면서 교섭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 쟁점 안건 중 은행측이 가장 강경하게 요구한 것은 페이밴드제다. 연차가 높아져도 승진을 하지 못하면 임금이 올라가지 않도록 벽을 만드는 제도다. 2014년 입사한 행원들부터 페이밴드를 적용하고 있다. 교섭에서 국민은행은 페이밴드 적용 대상을 전체 직원으로 확대하자고 요구했다. 지부는 선후배 간의 차별을 조장하고, 은행이 임금결정 권한을 행사해 노조를 무력화하는 제도라고 반발했다. 결렬 전 교섭에서 은행측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지부는 폐지를 요구했다.

저임금직군 차별해소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국민은행은 2014년 은행 창구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4천명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근속기간의 25%가량만 경력으로 인정했다. 지부는 경력인정 기간을 더 늘려 전환자들의 임금을 올리자고 제안했지만 은행측은 거부했다.

임금피크제 문제는 고용안정과 관련한 문제다. 은행권에서 임금피크제 진입연령은 곧 퇴직연령으로 받아들여진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느니 은행을 떠나는 선택을 하는 노동자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지부는 금융산업 노사가 산별중앙교섭에서 합의한 임금피크제 진입시기 1년 연장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57세로 진입시기를 늦추자는 요구다. 은행측은 만 56세 생일 다음날부터 곧바로 적용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지부가 파업을 예고한 뒤 교섭에서 은행측은 "성과급으로 통상임금 300%를 지급할 테니 임금피크제·페이밴드·L0 경력인정 문제는 은행 요구를 수용하라"고 제안했다. 지부 관계자는 "직원들을 손쉽게 통제하고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임금차별 제도를 고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돈만 먹고 나가 떨어지라는 식의 오만한 행태에 조합원들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홍배 위원장은 "L0 직급 문제와 페이밴드에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동료를 위해 파업에 동참한 다수 조합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청년 은행원들과 영업점 창구를 오랫동안 책임져 온 행원들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임단협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부당노동행위 의혹도 불거져

노사 갈등은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 지부는 8일 오전 파업선포식에서 교섭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이달 30일부터 다음달 1일에 2차 파업을, 2월26일~2월28일 3차 파업을, 3월21일~3월22일 4차 파업을, 3월27일~3월29일 5차 파업을 한다는 투쟁계획을 발표했다. 정시 출퇴근·계열사 상품 판매거부·비조합원 상급자 면담거부 같은 쟁의행위를 이어 간다.

은행측 부당노동행위에도 적극 대응한다. 지부에 따르면 일부 지점장들은 이날 파업참가 조합원들에게 복귀를 종용하거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연락을 했다. 파업전야제 참여를 막기 위해 지점장이 조합원들의 차량을 가로막거나, 퇴근시간 이후 회의를 소집한 사례도 있다. 모두 부당노동행위 소지가 짙다. 이 때문에 일부 조합원들은 8일 새벽 1시를 넘겨 전야제 행사장에 도착했다.

박홍배 위원장은 파업선포식에서 "차별을 철폐하고 조직 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어지는 파업투쟁으로 경영진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자"고 호소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노조 파업으로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파업으로 인한 고객 불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노조와 협상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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