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해고노동자와 노동정치

by 쇳물 posted Apr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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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와 노동정치

 

이 남 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경주에서 보낸 40여일.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선거운동에 몰입한 기간이 그새 꽤 흘렀다. 용산참사 살인진압 책임자 김석기를 응징하고 새누리당 일색의 대구경북 정치지형을 바꾸고자 국회의원 후보 출마를 결단한 권영국 변호사와 함께 먹고 자며 선거운동 속에서 배운 여러 가지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암울한 노동정치의 막장에서 확인한 활로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여 다행스럽다. 노동운동의 개입이 차단되다시피 한 총선이 새로운 깨달음의 통로가 됐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가장 정직하고 강력한 것은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것이다.

20대 총선은 노동자들과 노동운동 진영엔 참 곤혹스런 구도와 형세로 진행됐다. 계급투표의 강점이 집단숙의에 바탕한 조직적인 결의인데 그 효과를 기대하기가 난망해졌다. 역대 최악의 깜깜이 선거로 정책과 인물 대결이 실종됐다. 민주노동당 분당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분오열로 갈라진 진보정당 현실에서 계급의 일원인 유권자로서 노동자는 자신의 표를 행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삼분지계 전략은 국민의당에 자리를 뺏겼고, 진보정당들은 의미 있는 목표 달성은 접어 둔 채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내몰렸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선 원내진입이 가능한 여야 정당의 비례 앞 순위에 비정규 노동자가 아예 눈에 띄지 않는다. 19대 총선과는 딴판이다. 노동운동 위기가 총선을 통해 더욱 가시화됐다. 총선 결과와 별개로 노동운동은 이후 자신의 행보를 어떡해야 할지 근본적인 평가와 재출발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다.

노동정치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이 왜 이렇게까지 무력해졌을까. 새삼 노동운동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자본에 맞설 결기와 전략, 계급적 연대가 시나브로 약화돼 왔다. 반전 계기를 찾지 못한 채 현안 해결에 급급하느라 긴 호흡의 중장기 대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제야말로 지난 노동운동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어받아야 할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의 삶 속에서 자본의 질서에 예속돼 버린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면서 그 대척점에 놓인 해고노동자들의 분투를 떠올린다. 권영국도 그중 한 명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풍산금속 안강공장에서 일하다 민주노조를 만들고 두 번 해고되고 두 번 구속됐다. 복직이 불가능해지자 변호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늘 현장에 붙박혀 있었다. 사용자 사건을 수임하지 않겠다는 약속부터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부대끼면서 14년 동안 노동인권 변호사로 헌신해 온 과정까지 일관되게 노동활동가로서 자신의 행보를 결정했다. 이런 삶이었기에 그가 파렴치한 김석기를 잡으러 간다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신선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풍산금속 안강공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권영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열악한 방산업체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권영국이 감당한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선거운동에서 확인한 건 뜻밖이지만 감동적이었다. 진정성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잔잔한 물결처럼 출렁이게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풍산금속해고자협의회 정종길 의장을 비롯한 여러 해고노동자들과 가족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선거운동 결합은 현장에 기반한 참노동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 절감하게 했다. 민주노조운동 정신을 잊지 않고 현재도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실천하는 해고노동자들이 다시 모였을 때 그 힘은 대단히 컸다.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을 강행하면서 쉬운 해고가 모든 노동자들의 목전까지 왔다.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는 별스런 애기도 아니다. 전국 도처에서 사용자의 무차별 해고에 맞선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때 선배 해고노동자들이 정세를 갈라치는 메시지와 실천으로 주목받았던 것처럼, 다시 노동자들의 전면에 해고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정권의 탄압으로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경주에 출마한 권영국 변호사가 해고노동자가 해야 할 몫을 보여주고 있다. 해고노동자로서 해고노동자가 만들어 가는 희망을 보는 건 가슴 저리면서도 뿌듯하다. 경주에서 해고노동자들이 앞장선 노동정치의 새싹 틔우기가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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