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서] 트럼프 돌풍, 일회적 현상 아니다

by 노돗돌 posted Jul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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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돌풍, 일회적 현상 아니다

 

차태서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박사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공화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극단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그가 주류정치 무대의 정상부에 도달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미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도 이는 놀라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트럼프의 돌풍이 단순히 예외적인 돌출현상이 아니라, 미국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돼온 반자유주의적, 반국제주의적 흐름의 최근 사례라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여 온 자유주의의 나라, 혹은 코스모폴리탄적 국가로서 미국의 이미지는 사실 동부와 서부 해안의 엘리트들이 주도해온 주류 문화의 모습만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또 하나의 정치적 전통이 존재하는데, 정치학자들은 이를 흔히 ‘잭슨주의’ 전통이라고 부른다.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딴 이 이단적 흐름은 건국기 프론티어의 개척민들에게서 유래했으며, 반계몽주의적, 종교근본주의적, 쇼비니즘적 색채를 강하게 나타낸다. 즉, 자유주의적-세속적-세계주의적 특성을 지녔던 동부의 지배계층과 달리, 서부의 민중들은 처음부터 미국을 기독교를 믿는 백인들로 이루어진 배타적 인종-종교 공동체로 상상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민주의(populism)의 전통은 이후 미국정치사의 한 축을 구성하면서 자유주의적인 ‘미국적 신조(American Creed)’에 대항하는 대안적 정치비전을 대표하게 된다. 특히 경제적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잭슨주의적 사회운동이 부상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산업화의 과정에서 배재된 농민들이 만든 19세기 말의 인민당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민중운동의 흐름이 신좌파 역사가들에 의해 미국 급진주의의 계보로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반동적인 경향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고도화가 가져오는 사회문제들에 맞서, 미국의 인민주의 운동은 종종 기독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반지성주의와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을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오늘날 ‘티파티(Tea Party)’로 상징되는 미국 공화당의 급진 우경화와 트럼프의 부상은 이상의 잭슨주의적 전통이 미국정치의 주류무대로 재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트럼프의 선거구호는 기실 “미국을 다시 백인 개신교도들의 나라로 만들자”라고 해석가능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금융위기의 과정에서 배제된 내륙지역의 저소득 백인노동계층들의 분노를 겨냥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의 주된 당내 경쟁자가 티파티와 복음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은 또 다른 강경우파, 테드 크루즈였다는 사실은 현재의 공화당이 미국의 전후 리버럴 컨센서스에서 완전히 이탈했음을 지시한다.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잭슨주의 전통의 부상이 우려를 낳게 되는 것은, 이것이 기존의 미국 국가전략의 핵심을 이뤄온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쇠퇴를 뜻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의 틀을 구축하고, 세계의 경찰역할을 자임하면서 자유자본주의적 사회모델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전지구적 개입정책은 물론 일면 제3세계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투를 의미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20세기 전반기의 세계적 혼란을 수습하고, 북미와 서구지역에 유례없는 번영과 안정의 시기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라크전의 실패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으로 패권 운영에 필요한 권력기반이 침식되고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여건이 악화된 미국에서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국가적 합의는 붕괴되어가고 있다. 특히 고단한 삶에 지친 하층 백인노동계급은 미국우선주의 혹은 아메리카니즘을 외치는 트럼프의 신고립주의적 외교전략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거시적 정책변환이 국제문제 개입으로 소모되는 ‘불필요한’ 국가자원의 낭비를 축소하고, 자유무역과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막아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시대적 경향은 당파를 초월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 또한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트럼프의 등장과 신고립주의 독트린의 부상을 그저 일회적인 이변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보다는 오랜 미국정치역사의 맥락 속에서, 그리고 세계적 대불황이라는 정치경제적 배경 속에서, 향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여부와는 별개로 미국 외교정책의 대전환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전지구적 개입의지의 약화는 전간기와 같은 세계적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로의 진입을 야기할 수도 있다. 즉, 완전히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세계체제의 변화방향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면밀히 대응하는 국가적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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