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 '쥐어짜인 중산층'과 근로빈곤층, 해법은?

by 쇳물 posted Ja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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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짜인 중산층'과 근로빈곤층, 해법은?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은 영국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실업 증가, 임금 동결, 부채 증가, 고용 불안, 복지 삭감의 영향을 받아 사라지는 중산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는 2011년 에드 밀리밴드(Ed Miliband) 영국 노동당 당수가 BBC 라디오 방송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그 해 옥스퍼드 사전은 이 신조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였다.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영국 중산층 가구는 임금 하락과 주택, 대학 등록금, 청년 실업률의 증가 사이에서 쥐어짜이고 있다. 중산층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가난해질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영국 중산층의 소득 하락은 세대 간 사회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영국 정부의 '사회이동과 아동빈곤 위원회'(Social Mobility and Child Poverty Commission)는 중산층 자녀가 어른이 되면 현재 부모 세대보다 궁핍한 생활을 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해진 자녀 세대가 등장하는 현실은 100년 만의 초유의 사태이다. 영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왜 근로빈곤층이 증가하는가

최근 영국의 연금 수급자와 아동의 빈곤율은 낮아졌지만, 자녀가 없는 근로연령 세대의 빈곤율은 높아졌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구조와 기술의 변화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만든 복지정책의 차이로 발생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블레어 신노동당(New Labour) 정부의 보충연금(Pension Credit) 도입과 아동세액공제(Child Tax Credit)의 확대로 아동과 노인의 빈곤율이 감소했다. 반면에 자녀가 없는 근로연령 세대의 빈곤이 계속해서 증가했다. 이들은 2010년 집권한 보수-자민 연립정부의 공세적인'복지 삭감’의 표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 초에 연금 수급자와 아동이 전체 빈곤층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근로연령 세대 인구가 빈곤층의 60%를 차지한다.
현재 영국 빈곤층의 다수는 근로빈곤(in-work poverty) 상태이다. 빈곤 아동과 근로연령 세대 가구의 대부분은 적어도 한 명의 근로 소득자를 가지고 있다. 근로빈곤층이 빈곤층의 다수를 점한 것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처음 발생한 현상이다. 신노동당 정부가 처음 집권하던 1997년에는 근로빈곤층이 전체 빈곤층의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가구원 모두가 무직인 빈곤층은 300만 명 가까이 줄어든 반면, 근로빈곤층은 150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근로빈곤층의 급증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저임금(minimum wage)의 인상이 지체된 것과 관련이 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최저임금은 18% 올랐지만,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증가율은 7%에 머물렀다. 저임금 근로자는 모든 연령에 걸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연령대가 높을수록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저임금 근로자의 비율이 높은 반면, 연령대가 낮을수록 호텔과 식당에서 일하는 저임금 근로자의 비율이 높다.

생활임금 법제화, 새로운 복지정치

최근 영국에서 근로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생활임금(living wag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생활임금은 자산조사형 급여의 제공 없이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임금 수준을 말한다. 최근 영국에서 생활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는 전체 남성 근로자의 15%, 여성 근로자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영리재단인 생활임금재단(Living Wage Foundation)은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생활임금재단은 매년 생활임금 수준을 발표하는데, 시간당 생활임금은 2012년에 7.45 파운드, 2013년에 7.65 파운드로 측정되었다. 현재 영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6.5 파운드(1만 1300원)이다.

현재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생활임금의 도입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노동당은 2015년 총선에서 집권하면 생활임금을 법제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노동당은 생활임금을 실천하는 기업만이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사업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기업을 공시하여 제재를 가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수당 출신 보리스 존손 시장이 이끄는 런던시도 생활임금 적용 대상을 일반 기업까지 확장하였다. 런던시가 발표한 2015년 생활임금은 시간당 9.15파운드(약 1만5900원)로 영국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약 40% 높다.

한국의 생활임금 제도, 새로운 복지운동 의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생활임금'은 무력하게도 언론과 대중의 커다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도 생활임금의 법제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생활임금은 저임금과 불안정 일자리의 증가 등 고용의 질 악화되는 조건에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중요한 복지 의제가 될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생활임금을 도입하거나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생활임금의 도입이 오히려 저소득층과 빈곤층의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생활임금을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예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이미 20개 이상의 주에서 생활임금을 법제화했으며, 최근 독일에서도 시간당 8.5유로(약 1만1883원)로 정하는 최저임금법을 제정했다. 이러한 최저임금 보장은 사회적 비용을 지속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2015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7.1% 증가한 5580원이다. 아직 한국에서 생활임금의 도입은 걸음마 단계이다. 현재 서울시 노원구와 성북구, 경기도 부천시에서만 생활임금 제도를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최근 광주시 광산구, 대전시 유성구 등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도 '생활임금 조례 공포안'에서 서울시 본청과 산하기관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 가운데 저임금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간당 6738원의 생활임금의 적용을 명시했다. 조만간 국회에서 생활임금 개념을 법안에 명시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생활임금은 근로빈곤층과 불평등의 시대에 맞선 대중적 복지운동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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