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 개악을 막고 해고자 복직을 이뤄내겠다던 철도노조 지도부가 한국철도공사에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반발과 지부쟁대위의 반발로 간신히 백기 투항은 피했다. 사측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한 잠정합의안을 확대쟁대위가 총원 144명 중 64명이 찬성하고 74명이 반대해 부결시킨 것이다.

20일 오전 9시 파업 돌입을 앞두고 전날 밤 9시부터 전국 각지에서 해당 지부별로 모인 철도노동자 1만 3천여 명은 교섭 타결을 기다리며 새벽 1시가 넘도록 현장을 사수했다. 그러나 황정우 철도노조위원장이 1시 40분경 수색기차역 서울차량지부에 나타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이유는 황 위원장이 들고 온 잠정합의안이 노조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데다, 해고자 복직 문제 등 조합원의 주된 관심사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조합원들과 서울지부쟁대위 위원들은 황 위원장의 발표를 저지하면서 확대쟁대위의 ‘잠정합의안’ 부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날 황 위원장이 들고 온 잠정합의안은 중앙쟁대위와 지방쟁대위로 구성된 확대쟁대위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을 경우, 조합원 투표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합의안의 내용이 조합원들이 파업결의를 하게 된 쟁점사안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쟁대위를 통과해도 조합원 총투표에서의 가결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황 위원장이 제시한 잠정합의안은 △임금인상은 정부의 공기업 지침에 따라 결정하고 △자립경영 달성과 영업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철도노사가 노력하며 △미래지향적 노사관계 실현을 위한 노사관계 발전계획 수립 △2008년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인력운영개선 계획 수립 △기존의 노사문제에 따른 2009년도 계획을 상반기 내에 수립한다는 것 등이다.

조합원의 주요 관심사였던 해고자 복직 문제의 경우, 내년으로 넘기되 철도노사공동위원회를 건설해 그 안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단협은 이월되고 임금은 노조가 요구했던 5%가 아닌 3% 인상되며, 올해 안에는 해고자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게 됐다. 물론 합의안은 확대쟁대위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철도노조 파업유보



  • 철도노조가 파업을 유보한 것으로 결정하자 조합원이 황정우 위원장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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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부 쟁대위 위원들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해 ‘부결’을 선언하고 나섰고, 각 지부에서도 부결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총집계에서는 놀랍게도 총 144석 중 반대 76표로 과반석에 겨우 2표를 넘겼다. 이 안에 찬성하는 쟁대위 위원도 과반에 가까운 64명이나 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후 지도부 신임문제 등이 노조 상층에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조는 사측의 입장 발표가 있은 뒤 1장짜리 파업투쟁 유보지침으로 입장을 대신했다. 교섭과 관련된 공식입장은 발표하지 않았다. 파업 유보지침은 △20일 09시로 예정된 파업투쟁지침 유보 △파업농성장 조합원의 현장 복귀 △20일 15시 중앙쟁의대책위 회의 개최 등이다.

앞서 새벽 4시 30분경 사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철도노조가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측은 “예정된 시간에 파업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열차를 정상 운행하겠다”고 밝혔다.



노사협상



  • 철도노조와 철도공사가 최종협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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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쟁대위가 잠정합의안을 부결한 것과 관련 파업을 진행한다면 그 원인이 “해고자 복직임이 분명하다”며 불법파업 주장을 되풀이했다. 사측 관계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인터넷 생방송으로 송출된 전야제 영상(해고자 복직문제에 관한)을 ‘채증자료’로 쓸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측 관계자는 불법파업 판단기준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파업을 하지 않는데 불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거부한 잠정합의안이 “최선의 안”이라고 강조하면서 교섭이 재개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철도노조의 파업 여부를 지켜보던 서울지하철 노조도 새벽 3시 20분경 교섭타결을 선언하고 현장 복귀를 선언했다.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도 철도노조와 마찬가지로 거세게 반발해 지도부의 발언을 저지하거나 기물 등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새벽, 철도노조의 파업 유보 결정과 지하철노조의 교섭 타결로 이날 열차와 지하철은 정상 운행하게 됐다. 철도노조는 오후 3시 중앙쟁의대책위 회의를 열어 향후 일정을 결정한다.



현장으로 향하는 해고 노동자들



  • 현장을 순회하는 해고 철도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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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파업유보



  • 철도노조 한 조합원이 노사합의안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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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파업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