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게 질문했다." 이랜드 그룹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홈에버를 인수하는 홈플러스 이승한 사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부당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0일 넘게 농성 중인 이랜드 노조에 대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대량해고 비정규직 문제로 노사간 분쟁을 겪은 이랜드 그룹 내 홈에버가 결국 홈플러스에 매각된다.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과 권순문 이랜드그룹 M&A 총괄사장은 14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홈플러스가 이랜드그룹으로부터 홈에버 전매장 36개를 2조3천억원에 일괄 매입키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인수한 홈에버 36개점의 영업면적은 총 28만㎡, 임대매장은 12만 5천㎡이며, 이중 21개는 자가 점포이거나 부지임대 점포이고 나머지 15개는 임대 점포다. 이들 점포는 앞으로 12개월 내에 홈플러스 점포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랜드는 이미 올해 초 홈플러스로부터 인수의향서를 받아 인수가액과 채권.채무 정산, 고용승계 등 세부적인 계약조건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달 말에는 홈플러스 그룹사인 영국 테스코에서 10여명의 실무진이 파견돼 예비실사를 진행해왔다. 홈플러스는 이번에 홈에버의 부채를 포함해 지분 100%를 인수키로 했다. 홈에버 전체 매장은 5월 현재 전국적으로 35개, 개장 예정인 천호점을 포함하면 36개로, 이랜드 그룹은 2006년 까르푸로부터 이를 1조7천500억원에 인수했다. 이랜드 측은 홈에버를 성장시키는 것보다는 패션이나 아울렛 등 핵심역량을 지닌 사업분야의 성장과 인수합병(M&A)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그룹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홈에버 '매각'이라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랜드개발 권순문 사장은 "이랜드 그룹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꿨다"며 해외패션 시장에 대한 투자를 강하게 시작하려 한다고 홈에버 매각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경영의 실패와 노사간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내다 판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중론이다. 실제 2006년 4월 까르푸를 인수한 이후 당기순이익은 바닥을 치다 못해 마이너스를 기록해왔다. 2005년 까르푸 시절에는 68억이던 당기순이익이 2006년 홈에버에서는 -115억원, 노사분규가 심각하던 2007년에는 무려 1,939억원의 당기순이익 손실을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홈에버를 매입한 홈플러스에게 귀추가 주목되는 점은 노사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냐는 점이다. 하지만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홈플러스, 홈에버 직원 전원 고용승계, 노조인정은 '글쎄' 이 사장은 홈에버 직원의 고용승계 관련 "조건없이 전원 고용을 승계하겠다"며 "계약서에 그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홈에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총 5천500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해고된 노동자 복직과 노조인정에 대해서는 다소 에매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해고된 노동자 관련 "노조활동에 대해서는 아직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전제한 뒤 "적절하게 사안에 따라,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겠다"고 애둘러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경영자로서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듣기 좋은 말은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할 말은 하겠다는 것. 그는 해고자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복직이)안된다고 한다면 (복직이)안된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법적 기준에 맞춰 해고자 복직 문제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현재 해고된 노동자들 대부분은 계약만료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홈에버에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아 해고됐다. 계약만료는 법적으로 해고가 아니기에 법원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손을 들어 줄리는 만무한 상황이다. 이승호 사장의 '법적 기준' 발언을 주목하는 이유다.
노조 인정에 대해서도 홈플러스 측은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홈플러스 경영진은 대부분 삼성 출신으로 이는 홈플러스가 무노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홈플러스가 이랜드 소속 홈에버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승한 사장은 "노조가 현재 있는 것을 허용하고 시작하겠다"고 전제한 뒤 "워낙 (회사가)직원들을 위하고, 함께 해나가기 때문에 (노조에서 노조활동을)안하겠다면 말릴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노조 "이랜드에 대한 투쟁은 계속, 홈플러스와는 대화 시도"
실제 이랜드 그룹과 홈플러스 간 매각 계약서에는 올해 9월까지로 체결된 이랜드 그룹과 노조간 단체협약이 빠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한 사장은 노조 인정과 관련 "그런 것이 들어가면 계약서가 너무 복잡해진다"며 노조 인정이 매각 계약서와는 관련없는 사항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랜드 노조 측은 홈에버 매각에 대해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매각 관련 전혀 언질을 받지 못했다는 것. 이미 노조에서는 한 달전 매각 관련 공개질의서를 이랜드 그룹에 발송한 바 있다. 하지만 회사측에서는 '말도 안된다'고 부인해 왔다.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은 "고용승계를 하겠다고 핵심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관련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며 "이것을 빼고 매각을 발표하는 것은 두 회사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특히 홍 사무국장은 "올 9월까지 체결돼 있는 단체협약에는 회사 매각시 노조와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랜드 그룹은 매각과 관련, 노조와 단 한번의 대화도 나눈적 없다"고 꼬집었다.
이랜드 노조는 이후 투쟁을 계속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김경욱 위원장은 "기본적인 입장은 이랜드 투쟁을 계속 진행하고 홈플러스와는 대화를 시도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14일 저녁 대책회의를 갖고 향후 투쟁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며 15일 오전 사랑의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투쟁 방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