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동안 내린 폭설로 군산시 옥서면 일대는 눈밭과 빙판으로 변하면서 미공군 전부키 비행훈련이 잠시 중단돼 비행기 소음이 사라진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 평화를 뚫고 환갑이 넘은 할머니 10여명이 미군기지 정문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장갑, 모자, 털목도리, 외투 등으로 온몸을 감싸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기 위해 새해 벽두부터 미군기지 정문 앞에 모인 것이다.
할머니들은 한글과 영어로 ‘미군 측에서는 강제토지 수용된 것을 알고 있는가? 반값으로는 땅을 줄 수 없다‘라고 쓴 현수막을 미군기지 정문 양쪽에 펼쳐들었다. 어떤 할머니는 가게에서 빌려온 소주박스에 쪼그려 앉아 있고, 어떤 할머니는 어색한 듯 서성이고 또 다른 할머니는 닫힌 정문 쪽만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었다.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 채 발언에 나선 유태복 할머니 |
태어나 처음으로 시위라는 것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은 지난해 2월 군산미군기지 헬기장 확장을 위해 헐값으로 토지를 강제수용 당한 옥서면 주민들이다. 현재 32명의 농민들이 남아 보상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철조망 끝마무리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항의도 해보았지만 주민들만으로는 중과부족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소송도 보상가의 10%인상이라는 중재안이 나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보상액으로는 도저히 주변의 땅을 살수가 없어서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이들은 지난 12월 26일부터 집회신고를 내고 오후1시부터 시위를 하고 있다.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이 10년이 넘도록 매주 수요일 오후2시 집회를 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메가폰을 잡은 윤태복씨는 “정부측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3년에 걸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우리말을 손톱만치도 듣지 않고 있다”며 “밤에 자려고 해도 잠도 안 온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는가”라며 목이 터져라 외치며 답답한 속내를 하소연 하자 미군기지 인근에서 장사를 하던 한 주민이 욕설을 내뱉으며 “당신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엄동설한에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미군기지 앞에서의 2시간동안의 시위를 마친 할머니들을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는 1월 18일 행정소송에 대한 결심이 예정되어 있다. 아마도 쥐꼬리만큼 오르겠지. 하지만 이 분들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을까? “우리 편 들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며 소리친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