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미선 7주기…미군이 세운 추모비만 덩그라니

by 흰구름 posted Jun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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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여중생 신효순·심미선 양의 7주기 추모제가 12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사고현장 가까이에서 열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헌화 뒤 묵념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미군이 세운 추모비. 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6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폭 1.5m가량의 인도가 길게 나 있다. 2002년에도 인도가 있었더라면, 열다섯 살의 두 여중생이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을 그 도로다. 2002년 6월13일,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곳에서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여중생 효순·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사고 발생 6일 뒤 한-미 군당국은 “장갑차를 몰던 미군 2명은 과실이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미국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우리 사회는 처음으로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게 됐다.

7년이 흘렀지만, 사고를 일깨워주는 건 도로 언덕에 자리한 효순·미선양 추모비(사진)뿐이다. 미군 2사단이 사고 석달 뒤에 세운 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추모글은 “불의의 사고로 열다섯 꿈 많은 나이에 생을 접은 신효순과 심미선…”으로 시작한다. 추모글 마지막의 “미 2사단 일동” 부분은 누군가가 훼손한 흔적이 뚜렷하다.

효순·미선양이 살던 마을은 사고 현장에서 멀지 않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55)씨는 많이 초연해 있었다. 심씨는 “딸을 기억해주는 건 고마운데 그동안 이 일로 정부든 시민단체 쪽이든 여러 군데서 많이 시달렸다”며 “지난 이야기를 해서 뭐하겠느냐”고 말했다. 사고 뒤 마을을 떠나려 했지만 늙으신 어머니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집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에 미선양은 없었다.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55)씨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다. 최근 신씨를 만난 박석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사업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추모 물결을 보시고 당시를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라”고 근황을 전했다.

효순·미선양의 친구들은 이제 어른이 돼 대학이나 직장에 다니고 있다. 사고 당일 효순·미선양이 가려고 했던 생일잔치의 주인공인 이소정(22·가명)씨가 누구보다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 충격으로 한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사춘기 소녀들은 효순·미선양의 죽음을 이씨의 탓으로 돌렸고, 결국 학교도 옮겨야 했다. 이씨의 친구 홍석선(22)씨는 “소정이가 지금은 대학에서 친구들을 사귀며 잘 지내고 있지만, 당시 얘기만 꺼내면 말을 안 하려고 한다”며 “자기가 나중에 돈을 벌어서 (미군이 세운 추모비 말고) 추모비를 따로 세우겠다고만 말한다”고 전했다.

효순·미선양을 마음에 묻은 주변 사람들과 달리, 시민·사회단체는 두 사람을 기억해냄으로써 아픔을 치유하려고 한다. 평통사를 중심으로 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미군을 상대로 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편, 국민들의 힘으로 만든 추모비를 세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고 당시 효순·미선양의 친언니가 다녔던 의정부여고의 교사 등 지역민들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12일 오후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명은 사고 현장에서 두 여중생의 7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평통사는 1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효순·미선양의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박석분 팀장은 “애초 난색을 표시하던 미선양 아버지께서도 미군 쪽과 충돌만 없다면 추모비 건립에 협조하겠다고 어렵사리 동의하셨다”며 “10주기가 되는 2012년까지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담긴 추모비를 새로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주/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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