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부 조사단의 지난 6일 개성공단 방문·실사( < 한겨레 > 8일치 1면)와 관련해, 정부는 "북한의 심리전에 굴복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무시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의 김영철 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은 지난 6일 개성공단을 방문해 6시간 남짓 실태조사를 벌이면서 남쪽 관계자들에게 "철수하는 데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 등 강경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잇단 개성공단 관련 압박이 당장 '공단 폐쇄' 등의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공단마저 폐쇄할 경우 북쪽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위에 손상을 입힐 수 있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할 경우 북한의 대외 신뢰도를 무너뜨려 '오바마 당선'에 맞춘 북-미관계 개선 시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꼽힌다.
정부는 이번 군부 조사도 추가 행동을 예고한 것이기보다는 군부가 전면에 나서 '공단을 폐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남쪽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압박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남북 대결 구도에 입각한 정부의 '무시' 전략은 오히려 북한이 압박의 강도를 높이도록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정부 안에서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남쪽이 전향적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북쪽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지원 인력 일부를 철수시키는 등의 조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남북대화를 주도해온 노동당 통일전선부 등 '대남 라인'이 퇴조하고 군부가 남북관계의 전면으로 나서는 북한 내부 역관계의 변화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될 경우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여과없이 반영돼, 장기적으로는 개성공단 중단 등의 극단적 조처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군부 조사가 이뤄진 6일 나도 개성공단을 방문해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만났다"며 "리 부위원장이 군부 조사 사실을 전하며 '개성공단 등 남북관계가 막히면 다시 열기 어렵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남북관계를 '압박'과 '굴복'의 대결적 틀로 보면 해결책이 없다"며 "우리부터 먼저 '공존·공영'의 원칙으로 돌아가 활로를 열어야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