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른] 백기완 소장, 문정현 신부가 '꿀잠'에 바치는 한 권의 책

by 펌(오마이뉴스) posted Aug 09, 2017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선생님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공동 저자로 나서서 <두 어른>이란 제목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3만 부 판매가 목표입니다.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은 1100만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보탭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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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좌)와 '백발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우) ⓒ 이희훈

두 어른은 나의 스승이다.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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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투사'로 불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이희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산 자여 따르라~"

가수 전인권 씨가 지난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 촛불시민들을 감동케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직후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5.18 유가족도 합창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사실상 '금지곡'으로 찍혀 부르지 못한 노래였다. 이 노랫말의 모태가 된 시가 있다. <묏비나리>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아류지. 나를 미친개처럼 끌고 갔어. 하루는 매를 맞다가 때린 놈에게 말을 걸었어.

'이거 봐, 힘이 세서 매질이 매섭구먼. 근데 술도 먹을 줄 알아?'(백기완)
'야, 이 자식아 술 못 먹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런데 그건 왜 물어?'(고문 수사관)
'어디서 주로 먹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백기완)
'서울에 술집이 명동밖에 더 있어. 그런데 그걸 왜 물어?'(고문 수사관)
'술 먹고 나오는 명동 골목이 다 좁잖아. 신경 써야 할 거야.'(백기완)
'그게 무슨 말이야?'(고문 수사관)
'좁은 골목에서 나하고 부딪치면 넌 죽어, 이 새끼야!'(백기완)"

백기완 선생님(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979년 12월 보안사령부에 끌려갔을 때의 이야기다. 선생님은 그 말을 하고 엄청 맞았다. 권총 개머리판에 뒤통수를 맞고 끌려갈 때 몸무게가 82kg이었다. 한 달 만에 38kg으로 떨어졌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두드려 맞고 깨어보니 바지에 똥을 싼 날도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깔린 그 똥을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하고, 못 핥겠다고 하니 마구 밟았단다.

그때 백기완 선생님이 감옥의 천장과 벽에 웅얼거리며 쓴 시가 <묏비나리>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젊은 사제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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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위의 신부'라 불리는 문정현 신부. ⓒ 이희훈

1975년 4월 8일, 젊은 사제가 운구차를 견인하려던 크레인 위에서 몸부림치다가 떨어졌다. 그는 절룩거리며 운구차 밑으로 기어들어 가 온몸으로 버텼다. 맨몸으로 크레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운구차 바퀴가 그의 발을 밟고 지나갔다. 그는 장애 5급 판정을 받고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다. 그 젊은 사제는 문정현 신부님이다. 

인혁당 사건을 조작한 박정희 정권은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 사형수 8명의 시신을 탈취했다. 그들의 몸에 남은 뚜렷한 고문의 흔적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인혁당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한 뒤 18시간만인 다음날 새벽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한 '사법 살인'의 날이었다. 경찰은 유가족들을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백 선생님은 그때 감옥에서 문 신부님을 알게 됐다고 한다. 

"난, 문 신부님을 감격으로 알았어. 나를 고문하던 수사관이 '인혁당 처단'이라고 쓰인 신문을 보여주면서 '자식아! 너도 이 꼴이 날 수 있어'라고 말하더라고. 그때 문 신부가 뭐를 했다는 게 신문에 났어. 그렇게 알았어. 아, 이렇게 불덩어리 신부님도 있구나 하고 말이지."(백기완)

[백기완] 외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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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정택용

두 어른은 40년 전 이렇게 만나 한길을 걸었다. 지금도 길 위에 있다. 그때와 같은 게 있다면 여전히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노동자와 서민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두 어른은 수십 년 동안 싸워온 그 길 위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는 것이다. 고문과 투옥을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독재와 맞서다가 얻은 국가폭력의 흔적이다.      

백 선생님은 독재 시절 고문 후유증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용산참사 현장에 갔다. 35m 고공 크레인에서 300여 일 동안 농성하는 소금꽃 노동자 김진숙씨를 만나려고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에 달려갔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려고 거리에 서서 "해고는 죽음"이라고 외쳤다. 세월호 농성장에도 그가 있었다.

지난겨울 촛불집회 때에도 한 번도 빠짐 없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광장을 지켰다. 옷을 아홉 벌씩 껴입은 날도 많았다. 거리에 나가기 전날 저녁부터 물도 먹지 않았다. 광장의 인파를 헤치고 화장실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촛불 집회, 마지막 순서에 그는 백발의 갈깃머리를 휘날리며 무대에 올랐다. 

광장은 촛불바다였다. 서빙고 지하 고문실에서 그가 지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37년 전에는 죽음의 고문실 독방에서 혼자 외친 절규였다. 이날 광장을 가득 채운 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촛불들의 합창이었다. 가슴 벅찬 승리의 노래였다. 그가 꿈꾸었던 수백만의 장산곶매들이 촛불광장을 차고 솟구쳐 올랐다. 

여든다섯 살, 백발의 거리 투사는 광야에서 목 놓아 '외치는 자'다.

[문정현] 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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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 ⓒ 노순택

문 신부님도 이랬다. 경기도 화성 매향리 미군 폭격장을 폐지하려고 온몸으로 맞섰다. 이때 '길 위의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면서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936일 동안 촛불을 켰다. 지팡이를 들고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전국 순례길에도 함께 나섰다.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현장에 끝까지 남아 미사를 집전했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경찰과 삼성물산, 대림산업 직원들이 나와서 우리를 막 들어내더라고. 저항을 하니까 내 수염을 잡고 내동댕이쳤어. 두 주먹의 수염이 빠졌어.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더라고. 아무리 거지같이 생긴 사람이지만 나이 든 이의 수염을 뽑아서 내팽개치는 상황, 참 치욕스럽고 분했어."

문 신부님은 지금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내려다보이는 '골고다 언덕'에서 외로운 대지의 깃발을 들고 있다. 싸움을 시작한 지 10년째, 치욕을 견디고 있다. 

일흔아홉 살, 길 위의 신부는 항상 '남은 자'였다.

[한 권의 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꿀잠을 위한 <두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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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어른>전이라는 전시를 통해 작품을 판매해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을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 올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문정현 신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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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어른> 표지 이미지 ⓒ 오마이북

"붓을 들어보지 않았는데 무슨 붓글씨를 써!"(백기완)
"시간을 죽이려고, 화를 풀려고 판 건데, 무슨 작품이야!"(문정현)

처음엔 손사래를 쳤던 두 어른은 작년 6월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붓글씨·새김판(서각) 전시를 했다. 백발의 거리 투사는 붓을 들고 길 위의 싸움에서 얻은 깨달음을 한 문장씩 한지에 썼다. 길 위의 신부는 10여 년 동안 "심장을 깎는 심정으로 칼을 들고 망치질을 해온 새김판"을 내놓았다.     

1100만 비정규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였다. 예술가가 아니라고 사양했던 두 어른의 작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요즘 보기 드물게 '완판'됐다. 수익금은 모두 '꿀잠' 건립 기금으로 보탰다.

최근 두 어른은 책 한 권을 만들고 있다. '꿀잠'의 막바지 작업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여든 살의 나이에 늙은 예술가로 나섰던 이들은 이번엔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오마이북'이 '꿀잠'과 공동 기획해서 오는 10월경에 펴내는 <두 어른>이란 제목의 대담집이다. 1년 전 두 어른의 댓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두 어른을 따로 몇 번 더 만나 길거리 삶의 통찰을 추가했다. 붓글씨와 새김판에 새긴 짧은 글에 뼈와 살을 붙였다. 

백 선생님의 말씀은 비백(비로 쓴 것처럼 붓끝이 잘게 갈라져서 쓴 필체)이 살아 숨 쉬는 붓글씨를 닮았다.

"저 때문에 쓰는 힘은
갈데없이 시퍼런 칼이 된다.
나아가 저 한 사람 때문에 쓰면
어김없이 사나운 창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남몰래 수굿수굿
이 벗나래(세상)를 위해서 흘리는 땀은
곧 하제가 되는 거다.

하제라니 무슨 뜻일까.
희망이란 뜻을 글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내둘(표현)한
무지랭이들의 벅찬 숨결이다."(<두 어른> 98쪽)

문 신부님의 말씀은 칼과 망치를 들고 나무판에 새긴 '길 위의 기도문'이다.

"남은 자.
아픈 곳에 머무르는.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딴 길로 가지 않고.
언제나 아픈 곳에 남아 있고자.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두 어른> 37쪽)    

이 책을 만들자고 했을 때도 두 어른은 손사래를 쳤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이 잠시 꿀잠을 잘 곳을 짓는 데 부족한 비용을 채우는 걸 마다할 어른들은 아니었다. 차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내고, 누군가가 길을 침탈하면 끝까지 버텼던 두 어른.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 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고 싶다는 뜻이다.

두 어른은 수십 년 동안 길 위에서 민중과 함께 '외치는 자'였고, 고통의 거리에 천막 교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우며 아직도 '남은 자'다.  

[두 스승] 백발의 거리 투사와 길 위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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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좌)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좌) ⓒ 박은태

촛불정국이 시작되던 지난해 10월 말에 제주도 강정마을에 계신 문 신부님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백기완 선생님이 보내준 큼지막한 붓글씨 액자를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에 걸어 놨다.

"돌개바람 갈라치는 외로운 깃발이여."

보름 뒤에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 가서 백기완 선생님을 만났다. 전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새김판이 방문 정면에 걸려 있었다. 문 신부님이 나무판에 새긴 건 <묏비나리> "산 자여 따르라"였다.

이렇게 거리의 백발 투사와 길 위의 신부는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서로의 자부심이었다.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수십 년 동안 거리에서 지치지 않고 이 땅의 비정규직에게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우리 동지이자 우리 시대의 스승, 백발의 두 어른이 있어서 무척 고맙다.

두 어른이 만들고 있는 <두 어른> 책 수익금은 모두 '꿀잠'에 보탠다. 서울 영등포역 근처 25년 된 다세대 주택 건물 매입과 새 단장 비용이다. '꿀잠'은 두 어른의 붓글씨, 새김판 전시회 수익금으로 시작했지만 빚이 많다. 이 책 3만 부가 팔리면 비정규노동자들이 행복한 미래를 시작할 수 있다.

<두 어른>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에서 하룻밤을 쉬어갈 수 있다. 풍찬노숙하는 지친 몸들이 추스를 수 있는 방과 빨래방, 샤워실도 있다. 노동자들이 부당 노동 행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무료 노동 상담과 교육도 한다.

오늘도 지팡이를 들고 길 위로 나서는 두 어른.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내민 이들의 늙은 손을 맞잡아주기 바란다. 거리의 백발 투사와 길 위의 신부가 평생 동안 길 위에서 벼리고 벼린 명쾌한 문장들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 '외치는 자'와 '남은 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피어올린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시대, 진정한 스승을 만날 수 있다.

벽돌 한 장 얹자. 이제 기력이 쇠한 팔십 살의 두 어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쌓아 올리는 4층 벽돌 건물 <꿀잠>을 위해.  

책 <두 어른> 구매방법
1. 스토리펀딩 기사 읽고 신청하기 https://storyfunding.kakao.com/m/episode/26189
2.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신청하기 http://omn.kr/nvwv
3. <두 어른>과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휴대폰 010-3270-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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