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 과제

by 관리자 posted Aug 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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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인간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 과제



이  민  영 *



1. 머리말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기술이나 생산방식의 변화 등 생산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으면서 임금·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에 주력해왔다. 여기에는 우선 열악한 임금·근로조건의 개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가 반영되어 있었다. 또한 생산의 문제는 사용자의 일이고 노동조합이 할 일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며, 노동조합이 굳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악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생산성 향상에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87년 이후 임금·근로조건이 일정하게 개선되면서 노동자들의 인식과 태도는 변화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인상보다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 작업조건의 개선 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숙련향상 기회의 확대나 작업장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경쟁력 강화와 효율 제고를 구실로 한 기업측의 경영합리화정책은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리화'가 고용불안정의 확대, 임금·근로조건의 악화, 노동자들간 연대의 파괴와 노동조합의 약화 등 부정적인 요소를 안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합리화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으며 노동조합은 경영참가 등 합리화의 방향과 내용에 개입하기 위한 나름의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노동배제적 합리화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의 인간화를 제기하고자 한다. 노동의 인간화는 좁은 의미로는 작업조직을 변경함으로써 직무만족을 높이는 노무관리수단으로 볼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체제를 변혁하여 노동자들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삶을 실현하는 것까지를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노동의 인간화를 주로 현재 기업측이 추진하고 있는 경영합리화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논의할 것이다.
또한 사용자들의 경영합리화정책이 현장통제력을 강화하고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데 중심을 두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단순히 노동자들의 임금·근로조건 하락, 고용불안정 확대를 막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작업장 차원의 권력자원을 형성한다는 입장에서 노동의 인간화정책을 제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주로 산업민주주의의 실현, 숙련의 향상, 작업조직의 개선 등을 노동의 인간화의 내용으로 다룰 것이다.
이 글은 주로 제조업, 특히 금속부문 대기업의 경험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노동의 인간화가 다른 부문보다 주로 금속산업에서 제기되었고 한국의 경우에도 금속산업 대기업에서 합리화와 관련한 노사간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2. 경영합리화의 양상과 노동조합의 대응


1) 개요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각 기업들이 경영합리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배경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87년 이후 한국의 노사관계는 크게 변화하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더불어 많은 사업장에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설립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임금·근로조건은 일정하게 개선되었으며 기업측이 최대이윤을 얻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노동통제체제도 상당히 약화되었다. 다음으로 경제의 국제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각 기업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으며 효율성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각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경영합리화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산합리화, 노동력의 탄력적 이용, 노사관계의 안정화라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생산합리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자동화·신기술 도입의 확대와 표준작업제도의 강화이다. 이는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면서 그 활용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려는 기업측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력의 탄력적 이용과 관련해서는 각 기업들은 임금체계의 개편, 비정규 노동력 활용, 다기능화 등을 통해 이른바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조직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팀제를 도입하고 있다. 노사관계의 안정화는 이런 기업측의 합리화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최근 들어 중요한 변화는 기업측이 노무관리전략의 중심을 현장에 두면서 한편으로 기업 종사자들의 가족, 더 나아가서는 지역주민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합리화에 대한 한국 노동조합의 대응은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으나 경영합리화의 부정적인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노동조합운동도 나름의 대응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은 단위 기업 차원에 머물러 있고, 그 내용은 임금·근로조건의 개선, 고용안정의 보장 등으로 제한되며, 과정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 사후 결과에 대한 대응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2) 생산합리화

(1) 자동화·신기술의 도입

한국의 기업들은 80년대 중반 이래 임금비용의 상승, 파업으로 인한 생산 중단의 위험에 대처하면서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를 급속하게 진전시켜 왔다. 직접 생산공정에서는 로봇, 수치제어공작기계 등이 도입되었으며, 간접부문에서는 컴퓨터 지원 설계 및 제조시스템(CAD/CAM)이 도입되었다. 한편 LAN, VAN 등 정보통신기술이 공정관리, 근태관리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PC나 통신네트워크 등 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설계에서 출하까지의 전 과정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컴퓨터 통합생산시스템(CIM)을 추구하고 있다.
자동화와 신기술의 도입은 심각한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상공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동화를 추진함으로써 얻은 효과에 대해 기업들은 생산성이 약 62% 증가하였고 인원을 약 37% 절약하였다고 답하고 있다. 자동화와 신기술의 도입은 또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숙련을 해체하고 인간을 기계에 종속시키는 효과를 유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자동화와 신기술 도입에 따른 교육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음에 따라 작업자들이 단순한 기계 조작자 또는 자동화기계의 보조자로 전락하고 있는 점은 이런 우려를 더욱 짙게 한다.

<표 6-1> 자동화 추진 효과(단위: %)

주: 지역별·업종별로 표본 추출한 300개 사 대상 조사, 응답은 174개 사.
자료: 상공부 산업정책국 산업진흥과, [자동화 설비자금 운영실태 조사결과], 1992.

(2) 표준작업제도의 강화

표준작업제도의 강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산합리화의 주된 내용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기업측은 시간·동작연구를 실시하고 이를 근거로 표준작업서를 작성하여 정위치, 정시간, 정작업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개선활동을 통해 이를 끊임없이 개선하는 표준작업제도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기업측의 표준작업제도 강화는 신기술 도입, 신제품 생산, 라인 변경 등 구체적인 계기가 주어질 때뿐만 아니라 비용 절감과 생산량 증대를 위한 합리화를 추진하는 데서 핵심적인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이른바 택업(Tact-up) 이라고도 하는데 1시간 동안의 생산대수의 양적인 증가를 말한다. 둘째, 맨아워(M/H)의 감소 곧, 더 적은 인원을 배치하여 노동밀도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표준작업의 실시 단계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각 단위작업에 대하여 표준작업서가 작성되어 있는가, 개선활동을 통해 표준작업의 질이 어느 정도나 높아졌는가를 확인한다. 이것이 바로 표준작업 인증제도이다.
표준작업제도의 목표는 "모든 형태의 근무태만과 일부러 천천히 일하는 것을 제거하고, 경영진의 친밀한 협력과 도움(노동자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으로 개개의 노동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으면서 최대의 속도로 일하게" 하는 것이다(Taylor, 1947: 18). 결국 작업에서 최대한 여유시간을 줄이고 노동밀도를 높이려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노동조합의 대응: 고용 보호, 노동강도 규제

자동화·신기술 도입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은 노사합의에 의해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일부 노동조합에서는 단체협약에 '신기술 도입시 노사협의'를 명문화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기술 도입에 대한 대응이 노동조합의 주된 활동영역 가운데 하나라고 하기는 힘들며, 관심도 주로 신기술이 고용이나 노동조건, 노동강도 등에 미치는 영향으로 제한되어 있다. 표준작업의 재정비 등에 따른 노동강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현대정공노동조합의 경우 작업속도를 높일 경우 노사간에 합의하도록 하는 단체협약 조항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작업장 차원에서 규제하고 있다.
생산합리화가 첨예한 노사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경우 각 작업장 차원에서 현장투쟁이 빈발하고 있고 노동조합 대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작업속도, 감원 등을 규제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의 경우에는 노조 집행부에 생산문제를 전담하는 생산대책부가 설치되어 있어 작업장문제에 대한 대응이 비교적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대의원들로 구성된 공장투쟁위원회 등이 현장투쟁을 주도한다.  
한편 사후적이고 근로조건 보호 차원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부서인사공정위원회, 부서환경개선위원회, 노사소위원회 등 부서 단위 노사공동위원회 등을 통해 생산과정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라인 신설시에는 노사소위원회를 통해 생산량, 작업환경, 노동강도 등을 협의한다. 이를 통해 정원, 인원보충 및 조정, 사이클타임 등이 결정된다. 해당 부서 대의원을 주체로 하고 집행부의 생산대책부, 산업안전부, 조직부 등이 지원하는 형태의 이러한 노사공동위원회는 대의원 조직을 활성화하는 일상적 활동공간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김영두, 1996: 178-179).

2) 노동력의 탄력적 이용

(1) 임금체계 개편

89년 포항제철에서 직능급을 도입한 이래 삼성그룹, 럭키금성그룹, 현대그룹 등에서 현행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어 왔다. 자본측이 연공급을 직능급으로 개편하려 하는 이유로는 근속년수에 따른 임금의 자동적인 상승은 평균 근속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인건비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 연공급은 일의 성과가 반영된 임금이 아니므로 생산성을 제고하는 유인기능이 미흡하다는 것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젊은 층, 그리고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 기존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노동조합이 직능급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인사제도는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먼저 능력 중심의 인사관리는 젊은 층과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직군간 차별의 철폐, 승진적체의 해소 등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인사제도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직능자격제도 운용의 토대가 되는 인사고과제도이다. 직능자격제도에서 능력평가를 수행하는 주체는 기업이며 평가의 기준은 결국 '기업이 기대하는 직무수행 능력'이다. 따라서 신인사제도가 도입될 경우 노동자들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개별 노동자들이 기업의 요구에 얼마나 순응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본측은 신인사제도, 곧 능력주의적 인사관리를 경영합리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2) 정규직 감원과 비정규 노동력 활용

<표 6-2> 지난 3년간 정규직, 비정규직 인원변동(단위: %(개))

자료: 윤진호, 1996, p. 39.

각 기업들에서 임시직, 촉탁, 파트타임, 계약직, 용역, 사내하청 등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업측은 임금비용의 절감, 노동력의 탄력적 이용, 노조 회피 전략의 일환으로서 비정규 노동력 활용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청소, 운반, 자재보급 등 간접부문은 물론이고 직접생산라인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제조업 대기업에서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처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곳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도 비정규 노동력 활용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동일한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규직 임금의 70% 정도밖에 받지 못하며 고용불안도 심각한 실정이다. 이는 정규직의 고용불안, 노동강도 강화로 연결될 수 있으며 노동조합의 조직력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로 인한 노동자들간 연대의 약화문제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간주하거나 비정규직들이 '계급적인 차이에 기인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극단적인 경우도 없지 않다.  

(3) 다기능화

다기능화는 직장 내 모든 직무능력의 습득, 기계설비 보전업무의 수행, 자신이 가공·제조하는 제품의 품질에 대한 책임, 기계설비나 생산방법 개선 참여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기업측은 다기능화를 통해 작업자들이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결근 등으로 인한 생산중단에 용이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업무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곧, 한 작업자가 여러 기계나 공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한 사람이 담당하던 기계의 대수를 늘이거나 기존에 간접부서의 인원들이 담당하던 검사업무, 보전업무 등이 자주검사, 자주보전이라는 이름으로 직접부문에 통합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다기능화는 세분화된 분업 노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들의 직무만족과 숙련을 높이기보다는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성격의 것이다. 기업측은 기존의 직접생산 업무에 검사와 보전업무를 추가함으로써 간접부문 인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다기능화에 대해 일이 힘들어지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5장 노동의 인간화에 대한 의식조사분석 참조).
일본에서 다기능화를 실현하는 수단은 교육훈련, 직무순환, QC활동과 제안제도 등이다. 우리나라, 특히 생산직의 경우 현장훈련(OJT) 이외의 교육훈련은 거의 실시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QC활동, 제안제도 역시 형식적인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만 노동자들의 참여는 저조한 실정이다. 직무순환은 회사의 방침에 의해 체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기보다는 주로 작업부담의 경중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현장관리자의 판단이나 작업자들의 자율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순환범위도 대개 제한적이다. 우선 기업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용자들은 기본적으로 대량생산체제 하에서 직무의 세분화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예컨대 난이도가 높은 중요한 작업을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가 생기는 등, 다기능화를 위한 정기적인 직무순환이 생산에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도 회사측의 일방적인 전환배치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한다.

(4) 팀제의 도입

구상과 실행의 분리, 세분화된 직무, 위계적 통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테일러주의적 작업조직의 대안으로 팀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물론 각국마다 도입되고 있는 팀 또는 집단작업이 동일한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유럽식 팀제도는 팀장의 선출, 작업속도나 방식의 결정 등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권한이 주어지며 노동의 인간화 실현의 기회로서의 요소가 있지만 일본의 팀제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시스템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팀제가 도입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주로 관리직이나 사무직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생산직의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그림 6-1> 바로바로 생산시스템(LG전자 평택공장 PC생산부문)

자료: LG경제연구원 경영컨설팅센터, [자율경영팀 프로젝트 추진개요], 1995; 이정택,       1996, p. 256에서 재인용.

LG전자 평택공장과 구미공장의 경우 팀제가 도입되면서 '직·반장 중심의 현장자율경영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직·반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대폭 부여하고 그들의 능력배양을 위한 각종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컨베이어 설비에 의한 '일자라인 생산방식'에서 3-4인이 한 조를 이루어 조립, 검사, 포장까지 하는 '셀(Cell) 생산방식'으로 전환하여 '생산성과 직무만족의 증대를 도모'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이정택, 1996: 251-257).
그러나 팀제가 팀리더의 선출, 작업방식과 내용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 팀원들의 숙련향상과 승진 기회 등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기업측 주도로 도입될 경우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력 관리방식일 뿐이다. 이 경우 팀제는 인사노무관리 기능을 팀장에게 위임함으로써 노동통제를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업무범위를 확대하며 노동밀도를 높이는 역할만을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5) 노동조합의 대응: 유연성의 규제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유연성'을 최대한 규제한다는 입장에 서있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노동의 유연화'는 곧 고용불안정의 확대, 임금·근로조건의 악화, 노동자들간 연대의 파괴와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대응은 주로 직능급 도입 반대, 비정규 노동력 활용 제한 등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다기능화나 팀제에 대해서는 나름의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90년대 이후 노사간에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한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대안은 한 마디로 연공적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임금체계가 갖는 문제점은 생활보장의 미흡, 낮은 기본급 구성, 직급·직종간 임금차별로 요약할 수 있다. 인사제도와 관련해서는 인사고과의 자의성, 직종·직급간 승진 차별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직종·직군간 임금과 승진의 차별 해소를 약속하는 직능자격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기업측의 인사고과권의 강화 곧, 효율적인 통제수단의 확보라는 목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단일호봉제, 단일직급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고 일부 노동조합에서는 그것을 관철하기도 했다. 이것이 노동자들간 경쟁을 막고 단결과 연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안은 노동자들의 숙련형성과 승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한편 87년 이후 각 노동조합은 고용안정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 왔으며 임의적인 감원이나 정리해고, 공장이전, 비정규 노동력 활용 등을 규제하는 장치를 단체협약에 마련해 두고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고용문제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고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물론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대부분 정규직만을 조합가입 대상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정규직의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총력을 기울여 대응하지만 비정규의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비정규 노동력 활용에 대한 대안으로서 일정 기간이 지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하는 것 등이 있지만 두 가지 다 실제 시행하기에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회사측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동력이 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력 활용을 줄이고 정규직을 채용할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불안이나 직무불안정(배치전환 등)에 노출되게 되는데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3) 노사관계의 재편

(1) 현장통제의 강화와 기업문화운동

87년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등장함으로써 기존의 권위적, 병영적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자 각 기업들은 노무관리부서를 강화하면서 나름의 대응책을 실행하였다. 엄격한 채용관리, 개별 활동가나 활동가그룹에 대한 감시·감독의 강화, 협조적인 그룹의 양성, 조합원에 대한 후생복지의 확대와 인간관계활동의 강화 등이 그 구체적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기업측의 노무관리전략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변화는 그 초점을 현장에 두면서 한편으로 기업 종사자들의 가족, 더 나아가서는 지역주민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측은 현재의 노사관계에서 현장통제력과 더불어 국민의 여론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현장통제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가족과 지역주민들 속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기업측은 87년 이후 노동조합의 활성화에 따라 이완된 작업장의 노동규율을 회복하기 위해 질서 지키기 운동, 현장관리자의 역할 강화 등을 통해 노동규율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기업측은 현장관리자들의 지위와 권위를 회복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현장활동에 대응하여 현장의 위계질서를 현장관리자 위주로 확립하고 노동자들을 밀착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측이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기제는 활동비 지급, 인사권 강화, 교육 강화, 관리대상 인원수의 감소 등이다. 대우조선의 반생산회의, 현대중공업의 두레활동 등 소집단활동 역시 현장관리자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기업측은 기업문화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기업문화운동은 다양한 문화매체를 활용하여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감과 적대감을 희석함으로써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념에 맞는 자발적인 주체로서 활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기업문화운동의 구체적인 형태는 기업내의 각종 이벤트행사, 교육훈련을 통한 의식화, 사보나 소식지 등을 통한 홍보활동, 각종 소모임 등을 통한 인간관계활동, 복지후생제도의 확대, 지역주민 대상의 활동 등이다. 기업문화운동은 본질적으로는 경영위기 등을 구실로 기업의 목표를 노동자들에게 '주입'하는 것이지만 노동자들의 자발성이라는 형식을 띄고 진행되고 있다.  
기업문화운동은 다른 합리화조치에 비해 노동자들이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편이다. 이는 역으로 기업문화운동이 노동자들에게 기업목표를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고 그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저항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두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노동조합의 대응: 현장조직력 강화, 활동영역 확대

87년 이후 노동조합 현장조직의 축은 어용노조의 민주화를 자신의 목표로 삼는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노민추) 형태가 지배적인 것이었다. 노민추는 현장투쟁을 주도하면서 현장조직력을 강화했으며, 노조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집행부를 장악하고 난 후에는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선 집행부를 구성하는 데 대부분의 역량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노동조합을 민주화한다는 '노민추'의 목표가 달성된 이후에는 다른 내용과 형태를 가진 현장조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대의원(그리고 소위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의원들은 작업현장의 일상적인 고충처리를 담당하고 있고 작업방식, 속도, 배치전환 등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아무튼 노동조합 현장활동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듯하다.
한편 최근 들어 노동조합들은 기업문화운동에 대해 더욱 치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우조선노조의 경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기업측의 기업문화운동에 대응하고 있다. 먼저 조합원의 80%가 주택을, 75%가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고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정서와 요구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소비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노조 제휴카드'를 발급해서 지역의 주유소, 여객선, 의류점, 옷감가게, 책방, 신발점, 유리점, 시계가게, 꽃집, 보석상, 자전거가게 등에서 조합원들이 10-20%의 가격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인기를 모아 5천장이 발급되었다. 또한 지역주민과 결합하기 위해 낙도 어린이 초청 조선소 관광, 아동영화 무료 상영, 무의탁 노인 초청 식사대접과 오락, 무의탁 노인을 위한 일일찻집, 지역 내 중증 지체 부자유자와 소아자폐증 환자들에 대한 지원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명절에 회사가 지급하는 선물을 지역특산물로 하도록 하고, 사내식당 부식재료를 거제의 농축산물로 구입하도록 단체협약에 명문화했다.  


3. 노동의 인간화의 현 단계


1) 경영합리화와 노동조합, 노동의 인간화

자본측의 경영합리화전략의 목표는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임으로써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는 노동력의 최대 활용이다. 따라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이해와 대립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영합리화의 구체적 양상은 각국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노사간 역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며, 반드시 노동측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지역에서 진행된 노동의 인간화 실험이 그러하다.
이것은 사용자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시장에서 고객지향성과 품질이 강조되고, 신기술이 급속하게 도입되는 조건에서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 직무의 세분화와 탈숙련, 위계적 노동통제가 곧 최대 이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 각국의 초일류 기업들이 기업경영에서 이른바 '참여경영', '인적자원관리'를 강조하고 있고, 과로사를 유발할 정도로 높은 노동강도와 열악한 근로조건에 기반하여 높은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작업시간의 틈새를 늘리며 재고 없는 생산방식을 완화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유인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런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측 경영합리화전략의 기조는 생산설비의 해외이전, 하청의 확대 등을 통해 직접 생산품의 비중을 낮추는 한편 자동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정규인력의 노동밀도를 높이기 위해 현장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고 있는 신설공장에서 기업측의 이런 전략이 노골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경우 자동화 수준을 극도로 높이는 한편 작업중 이동시간을 공수 계산에서 제외하는 등 표준작업제도를 강화함으로써 필요인력을 40% 정도 절감하였다. 비정규 인력의 비중도 높아 전체의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기업측은 이런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채용시 과거에 노동조합활동 전력이 있는 사람은 배제하고, 입사시 한 달간의 의식화교육을 실시하였다(노동조합 간부 면담자료, 1997. 4. 3).    
왜 경영합리화의 양상이 시대나 나라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가. 이와 관련하여 기술 또는 시장과 노동의 인간화 실현 가능성을 연계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현대 기술과 제품시장이 언제 어디서나 노동의 인간화 실현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극소전자 회로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유형의 작업조직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가공하고 전달하는 능력의 증대는 통제의 중앙화와 업무의 차별화를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그것들은 조직이 더욱 복잡하고 특수한 환경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유연한 하부단위에 결정을 위임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한편 신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가는 다시 해당 기업이 소속되어 있는 생산시장과 연관되어 있다. 현재의 생산시장에서는 점점 고객지향성과 품질이 중시되고 있다. 그리고 다품종 소량생산 또는 고객지향 생산을 할만큼 유연한 기업들은 높은 이윤을 올릴 수 있고, 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으며 장기적인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 노동자들의 참여와 높은 숙련, 분권화된 작업조직 등은 이 경우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량 생산, 고객지향 생산의 경제적인 유인력은 해당 국가나 지역의 임금수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임금을 충분히 낮출 수 있는 기업들은 대량생산자로서 전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Streeck, 1992: 256-258).
신기술과 제품시장 변화의 기회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가,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한편으로 해당 국가의 노사간 역관계와 이를 반영하는 노사관계제도,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노사의 전략에 달려 있다. 예컨대 노동운동이 강력한 정치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으며 산업민주주의가 발전되어 있고 노동조합이 작업장의 변화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 사용자들의 전략적 선택은 제약되고 사용자들은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분권화된 작업조직과 고임금·고숙련 노동자를 갖추고, 고객 지향적인 재화를 생산하는 품질경쟁력이 있는 생산자가 되기를 원할 가능성이 높으며 여기에서 노동의 인간화 실현의 가능성도 높다. 노동운동의 힘과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며 노동조합이 대안을 제시하면서 작업장의 변화에 개입하지 않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사용자들이 품질경쟁력이 있는 생산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경영합리화의 구체적인 양상은 노동의 인간화 실현보다는 노동자들에 대한 포섭전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노동운동이 국가에 포섭되어 있고 임금수준이 낮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사용자들이 위계적인 조직구조, 탈숙련, 저임금 등으로 표준화된 재화를 생산하는 가격경쟁력을 갖춘 생산자가 되기를 원하기 쉬우며 경영합리화는 곧 비인간화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경우 노동배제적 경영합리화, 낮은 노동의 인간화 수준은 먼저 국제분업구조에서 차지하는 한국 경제의 지위가 소품종 대량생산자로서의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다는 것에서 연유한다. 물론 중국,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의 저가상품시장 점유율이 높아짐에 따라 가격경쟁력 위주의 전략이 한계에 부닥치고 있고 고객지향성과 품질이 강조되는 현재의 상품시장의 조건을 고려할 때 사용자들의 입장에서도 앞으로 나름의 노동의 인간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이 임금·근로조건개선투쟁에 머물러 있고 예컨대 산업민주주의제도나 숙련형성, 작업조직 개편에 개입하는 방향으로 조직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며 정치적인 영향력도 취약한 상태에 있는 조건에서는 노동의 인간화 실현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측의 경영합리화전략이 강화됨에 따라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노동자들도 나타나고 있고 노동조합도 나름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현장조직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일방적인 노동강도 강화나 전환배치에 대응하여 작업장 차원에서 대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대응은 현재까지는 임금·근로조건, 노동조합활동과 직접 연관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폭이 좁은 편이고 사전적인 예방이나 규제라기보다는 사후의 결과에 대한 저항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방식의 활동이 한계에 부닥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노동조합 조직력을 잠식할 수 있다(Turner, 1991)는 점은 외국 노동조합운동의 경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2) 산업민주주의

최근 경영합리화의 부정적인 영향이 노골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산업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현재 산업민주주의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낮은 편이다. <표 6-3>의 평균점수는 노사합의, 사전협의, 사전통보, 사후통보를 각각 4점, 3점, 2점, 1점, 회사 일방시행 0점으로 점수화한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사전협의에서 사후통보 수준이며 제도화 정도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각 영역별로는 임금·근로조건, 인사, 산업안전, 고용관련사항의 산업민주주의 수준이 높고 제도화가 잘되어 있는 반면 교육훈련, 생산, 고용관련 사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민주주의의 수준이 가장 높은 사항은 임금·근로조건과 관련한 것이다. 전체 평균점수는 2.9651점으로 사전협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인사고과 기준은 1.7177점으로 사전통보 수준을 하회하며 제도화도 안되어 있는 편이다. 이는 노동자들에 대한 핵심적인 통제장치라고 할 수 있는 인사고과와 관련하여 기업측의 일방적인 결정이 지배적이며 노동조합도 이에 대해 규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사와 관련한 영역, 특히 노동조합 간부의 인사와 관련한 산업민주주의 수준과 제도화 정도는 각각 사전협의, 단체협약 명시 88.8%로 높은 편이다. 이는 주도적인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통해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사용자들의 전략에 대해 노동조합이 사활을 걸고 대응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기업측의 인사관행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들의 인사와 관련한 부분의 산업민주주의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미조직 부문의 경우에는 일방적인 인사관행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과 관련한 사항의 산업민주주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사전통보 수준이다. 여기에서 정기검사 결과에 대한 개선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은 평균점수가 1.1775로 사후 통보하는 정도이고 단체협약 명시가 20.5%로 제도화 수준도 낮은 편이다. 이는 산업안전과 관련한 활동이 사후대책 차원에 머물러 있고 사전예방에는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고 있는 사정을 반영한다.

<표 6-3> 한국의 산업민주주의

주: 우편조사를 통해 수거된 유효 설문지는 389부임.
자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조합의 경영참가에 대한         실태조사], 1995.

고용관련 사항은 전체적으로 사전통보 수준이나 정규직의 고용문제와 관련한 사항은 사전통보 수준을 상회하고 제도화도 상대적으로 잘되어 있는 반면, 비정규직관련 사항은 사후통보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제도화도 안되어 있어 그 양상이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기업측이 비정규직 인력을 수량적 유연성 확보의 주요한 방편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조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으며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때문이다.
교육훈련, 생산, 경영관련 사항은 전체적으로 사후통보 수준이고 제도화도 안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작업조직 변경과 하도급 전환관련 사항의 평균점수가 각각 1.6288, 1.5498로 다른 사항에 비해 높은 것이 특징적인 점이다. 이 사항은 조합원들의 고용 또는 직무 안정성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어서 노동조합이 다른 사항에 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3) 숙련과 작업조직

기술이 급속하게 변화함에 따라 기업내 교육훈련의 중요성, 곧 '작업장을 학습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갖는 의의가 부각되고 있다(Streeck, 1992).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 동안 교육훈련투자에 매우 인색하였다. 제조업 1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했을 때 1988년에 연간 1인당 교육훈련비는 7.9만원에 불과하였다. 이는 이후 증가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1993년에도 27.7만원에 그치고 있다. 한편 1인당 기계장비액은 1988년에 약 900만원으로 1인당 교육훈련비의 100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후 1인당 교육훈련비 대비 1인당 기계장비액의 비중은 약간씩 감소하고 있지만 1993년도에도 약 90배에 달하고 있다(류장수, 1995: 81-82). 특히 생산직 사원들의 경우 현장훈련(OJT) 이외에는 교육훈련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먼저 시설·장비구입비용(28.6%), 직업훈련 수료자 근속 저조(16.8%), 직업훈련비용 기준 불합리(5.6%), 채용 불가자 발생(4.1%) 등 직업훈련비용에 대한 손익계산과 관련한 문제, 곧 "직업훈련비용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 때문에 직업훈련을 기피하고 있다. 이것은 사용자측이 직업훈련을 실시할 때 항상 고려하는 것이고 장애가 되는 요인이다. 다음으로 기업들은 기능수준상 불필요(26.0%), 기능향상에 기여 낮음(8.7%) 등 직업훈련 자체의 필요성이나 그 효과를 의문시하고 있다.

<표 6-4> 사업내 직업훈련 미활성화 이유(단위: 개(%))

주: 98개 사업체가 2개씩 응답.
자료: 박기성, 1992, p. 170.

한편 우리나라의 작업조직은 테일러·포드주의적인 원리에 따라 조직된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경우 직무는 세분화되어 있고 작업속도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종속되며 직무의 다양성, 상위 직무의 통합, 작업방식과 작업내용에 대한 자율성 등은 부정된다. 반면 현장관리자에 의한 위계적인 통제가 강조되며 노동자들의 창의성과 열의는 억제된다. 최근 들어 다기능화의 추진, 셀생산방식 도입 등이 기존 작업조직을 형식적인 면에서는 일정하게 변화시키고 있으나 근본적인 혁신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림 6-2> 생산직 숙련수준의 변화 추이

통제나 자율성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자율성을 축소시키고 통제를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현장관리자의 수를 늘이고 노무관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직무내용과 관련해서도 효율적인 통제나 표준화를 위해 작업자들의 프로그램 작성이나 수정 업무를 규제하는 경우도 있다. 작업자들이 프로그램 작성을 담당하는 경우 맨아워(M/H)를 통제하기가 어렵고 임의적인 수정은 제품의 표준화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생산직 노동자들의 숙련수준과 작업조직의 변화를 <그림 6-2>를 통해 확인해보자. 1980년에서 1990년 동안 노동자들의 교육년수, 근속년수, 경력년수 등이 각각 1.17배, 1.93배, 1.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직무 다양성도 80년대 중반 이후 약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기업측의 다기능화 추진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1980년에 비한 1990년의 지적 숙련 지표는 1.14로 거의 늘어나지 않아 인적자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통제감독기능을 담당하는 사람의 비중은 같은 기간 동안 약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4. 노동의 인간화 실현을 위한 모색


1) 노동의 인간화정책의 기본 방향

노동의 인간화를 좁게 해석하면 테일러·포드주의적인 작업조직 원리, 곧 직무의 세분화, 탈숙련과 위계적인 통제 등을 반대하고 노동자들의 직무만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작업조직을 재조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경영학적인 논의에서는 노동의 인간화를 근로조건을 개선하거나 작업조직과 작업방식을 개편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을 인사관리, 생산관리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관리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팀작업방식이나 U라인의 도입이 곧 노동의 인간화는 아닌 것이다.
노동의 인간화는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특히 경영합리화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는 데서 일차적인 것은 그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 임금·근로조건의 유지·개선
― 고용안정의 보장(예를 들어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외주 하청 확대, 노동 대체적인 신기술 도입 등을 규제하는 것,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
― 인사고과의 부활 또는 강화를 막는 것
― 일방적인 현장통제나 노동강도의 강화를 막는 것
― 노동자들에 대한 의식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통제하는 것

그러나 노동의 인간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영합리화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개입하면서 작업장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경영합리화의 부정적 영향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은 수세적이며 경영합리화의 결과에 대한 대응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서 작업장 자체를 인간적으로 형성하기 위한 활동과 결합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산업민주주의의 실현, 숙련의 향상, 작업조직의 민주적 개편 등이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특히 산업민주주의의 실현을 주된 과제로 삼아야 한다. 산업민주주의는 작업장 차원 노사관계의 정치적 측면을 나타낸다. 산업민주주의란 작업현장에서 민주주의를 관철하는 것으로서 기업의 경영과 생산이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시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산업민주주의는 노동의 인간화의 핵심적 요소이다.
숙련과 작업조직은 작업장 차원 노사관계의 토대라 할 수 있는 노동과정의 성격을 드러낸다. 숙련은 노동과정의 내용이며 작업조직은 그것을 담는 형식이다. 숙련을 좁게 파악하면 기능과 동일한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숙련을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할 경우 사고력과 판단력 등 지적 숙련이 그 핵심 내용이 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지적 숙련은 노동자 개인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으로서도 중요한 권력자원이 된다. 사실 테일러·포드주의적인 생산방식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생산 노동자들한테 사고능력 곧 지적 숙련을 박탈하는 것이었고 이는 노동통제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물적 기반이었다.
숙련형성을 위해서는 테일러·포드주의적인 작업조직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테일러·포드주의적인 작업조직은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탈숙련을 전제로 한 것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숙련향상을 크게 제약한다. 역으로 노동자들의 숙련수준이 높을 경우 테일러·포드주의적 작업조직 원리가 곧이곧대로 관철되기는 힘들다. 노동자들의 높은 숙련수준은 민주적 작업조직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Roth, 1995).
한편 숙련과 작업조직, 그리고 산업민주주의는 서로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높은 숙련과 민주적인 작업조직은 그 자체가 산업민주주의의 중요한 내용이며 전반적인 산업민주주의의 실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현장관리자 선출제는 그 자체가 산업민주주의 주요 내용이며 전체 기업의 관리방식을 민주화하는 기초가 될 수 있고, 노동자들이 높은 숙련수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 기업측의 위계적인 통제방식이 관철되기는 힘들다. 역으로 산업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경우 노동자들은 자신의 창조성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으며 이는 숙련형성과 작업조직의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산업민주주의의 확대

기업측이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삼아 경영합리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조건에서 산업민주주의가 갖는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경영전략의 공동결정이라는 차원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경영전략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경우 그것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산업민주주주의는 노동조합이 작업장을 인간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전제조건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이 산업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 방법은 단체협약 영역을 생산·경영관련 사항으로 더욱 확대하고 노사협의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단체협약 영역의 확대가 일차적인 과제가 된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단체협약 영역의 확대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법률적으로 보장된 노사협의기구를 충실히 활용하여 산업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제까지 노사협의회는 주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기능을 보완하는, 주로 조합원들의 고충이나 복지관련 사항 등을 해결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무엇보다 과거의 노사협의회법이 갖는 제한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개정된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교육훈련 및 능력개발 기본계획 수립 등 합의사항을 신설하였고 협의사항에서도 경영상 또는 기술상의 사정으로 인한 인력의 배치전환·재훈련·해고 등 고용조정의 일반원칙, 작업 및 휴게시간의 운용, 임금의 지불방법·체계·구조 등의 제도 개선, 신기계·기술의 도입 또는 작업공정의 개선 등의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노동조합이 기업측의 경영합리화전략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고 있다.

<표 6-5> 신구 노사협의회법 비교


참고로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독일의 종업원대표법과 비교해보면 독일의 종업원대표법이 상대적으로 공동결정권, 합의 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반면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독일의 종업원대표법도, 한국에서 조직력이 강한 노동조합들의 경우 사실상 합의권을 확보하고 있는, 임금·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만 공동결정권이나 동의권을 보장하고 있을 뿐이며 경영관련 사항, 생산관련 사항의 경우에는 정보권이나 협의권 정도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노사협의회법을 개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일단 제도적으로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표 6-6> 독일 종업원대표법과 개정 노사협의회법의 참가권 비교

자료: The Federal Minister of Labour and Social Affairs, 1991;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       진에 관한 법률.

물론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합리화와 관련한 사항을 단체교섭에서 배제하고 노사협의로 대체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여기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으며 일단 노사협의회에서 논의를 진전시켜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하는 것, 곧 '노사협의회를 단체교섭의 연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여기에 어느 정도 역량을 투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기업측의 제안을 압도하면서 조합원들의 힘을 집중하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사업장의 구체적인 실정에 근거한 '대안'을 제출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3) 숙련과 작업조직

직업훈련 실시에 노동조합이 개입하는 일은 노동조합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그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조합원들은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있으며 노동조합운동은 그것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들의 경력개발에 기여하는 일은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삶의 요구에 다가감으로써 조직 확대·강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업측의 의식화교육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숙련향상을 위한 직무교육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숙련형성에 개입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 교육훈련계획이 반드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 수립·시행되게 하는 것
― 유급 교육훈련의 기회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예를 들어 입사 초기의 양성훈련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향상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 교육훈련이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숙련향상에 기여하게 하는 것(예를 들어  단순한 기능교육이 아니라 구조와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되게 하는 것, 기업측의 합리화전략을 정당화하는 의식화 교육을 막는 것 등)
― 교육 기회가 전체 노동자들에게 평등하게 돌아가며, 특히 합리화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교육 기회의 우선권이 보장되게 하는 것(예를 들어 교육훈련이 중간관리자 위주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 신기술·신기계가 도입되는 경우 반드시 관련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 등)
― 교육훈련의 내용이 자격증의 취득과 최대한 연계되도록 하는 것
― 교육훈련이 성인교육방법을 이용하여 행해지게 하는 것(예를 들어 강의식 교육을 탈피하고 토론 위주로 진행하는 것, 다양한 교보재를 활용하는 것)  

작업조직을 민주적으로 개편하여 직무를 다양화하고 그 질을 높이는 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숙련형성을 위한 토대가 된다. 한국에서 사용자들이, 그리고 노동자들도 숙련형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숙련보다는 체력을 요구하는" 작업장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반복적인 기능만을 요구하는 작업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곧 숙련형성의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작업조직의 개편은 기업측의 노무관리전략에 대처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현재 기업측은 현장관리자들에게 노무관리기능을 맡도록 함으로써 노무관리층을 두텁게 하고 현장에 밀착하게 하여 현장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이것이 노동조합의 현장조직력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현장관리자의 선임에 노동자들이 개입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작업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해서는 컨베이어벨트의 폐지 등 생산설비의 개선과 레이아웃의 변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막대한 설비투자비용이 요구되고 신설공장이 세워질 때 노동조합이 처음부터 개입하지 않으면 관철하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 노동조합운동은 이를 중장기적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며 중단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 현장관리자가 민주적으로 선출되도록 하는 것. 사업장의 역관계와 구체적인 작업조건을 고려하여 직접투표에 의한 선출제, 순환제, 2-3인을 노동자들이 추천하고 기업측이 최종 선택하는 방식, 기업측이 선임하되 대다수 노동자들의 의사에 반하지 않도록 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 작업속도, 작업방식, 작업내용에 관한 합의권을 보장받는 것. 현대정공노동조합의 경우 이미 작업속도에 관한 합의권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하였고 다른 노동조합의 경우에도 일정한 참여권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체계적인 직무순환이 행해지도록 하는 것. 이는 작업의 단조로움 뿐 아니라 노동자들간 업무부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부분적으로 숙련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 최대한 상위의 직무,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수정과 작성, 보전·검사업무 등을 통합하는 것. 이는 노동자들의 숙련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직무를 다양화하고 사이클타임을 연장하는 것. 이는 직무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 작업시간 중에 예를 들어 1주 1시간 정도의 회의시간을 확보하는 것. 이는 작업방식과 내용, 작업속도 등에 대해 작업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제기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

4) 노동의 인간화와 연대정책

노동의 인간화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조합활동의 개선이 일차적 과제이다. 노동의 인간화는 노사간의 역관계에 의해 좌우되며 특히 한국의 경우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의 인간화 실험을 추진할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의 인간화를 강제할 수 있는 주체역량과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의 폭을 넓히고 질을 높이기 위한 연대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일이다.
특히 산별노조 건설, 곧 연대적인 조직정책은 노동의 인간화와 관련해서 중요한 과제가 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는 데 장애요인 가운데 하나로 노동조합이 임금·근로조건 개선, 곧 분배 위주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 노동조합도 임금·근로조건 개선활동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없다. 이 문제는 한국의 노동조합이 기업별로 조직되어 있고 단체교섭도 단위 기업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업별 조직이 여기에 거의 모든 힘을 쏟는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사실 노동조합이 산업별로 조직되고 단체교섭도 산업별로 이루어질 경우 기업 차원의 조직 곧 산업별노동조합의 지부나 분회가 보충교섭을 한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많은 힘을 임금·근로조건 개선 이외의 활동에 쏟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정한 산업에서 기술변화와 합리화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량을 집중하여 산업 전체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노동조합이 노동의 인간화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문역량을 쌓고 재정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기업별 노동조합이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산업별 노동조합 건설은 노동의 인간화 실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인 것이다.
둘째, 연대적인 임금정책은 노동의 인간화 실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연대적인 임금정책은 고임금과 평등한 임금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임금이 높고 하방경직적인 경우 사용자들은 노동의 인간화를 통해 효율을 제고하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임금수준이 낮고 임금격차가 크면 클수록 사용자들의 인간화에 대한 관심은 적어지고 사용자들은 가격경쟁력 위주의 전략을 택할 여지가 크다. 노동의 인간화가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들은 그 대상을 핵심부문을 담당하는 일부 고임금 노동자들로 제한하면서 여타 부문의 경우 저임금·저숙련 노동력을 이용함으로써 전체적인 비용을 낮추려 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의 인간화, 특히 숙련형성을 위해서는 숙련에 대해 보상하는 임금제도의 도입도 중요하다. 이는 노동자들이 학습에 열의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기업측에 일정한 내적 유연성을 제공하여 수량적 유연성 확보를 통한 비용절감 압력을 완화한다. 그러나 합리화에 따른 직무내용의 변화가 임금소득의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직무급과는 달리 한국의 연공급 임금체계는 오히려 경영합리화의 부정적 영향, 예를 들어 극단적인 경쟁과 개별화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요소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볼 때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숙련에 대한 보상은 연공급을 보완하는 것이어야 하며 평가기준의 설정과 평가과정에 노동조합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노동의 인간화 실현을 위해서는 연대적인 고용정책, 곧 고용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호하는 제도를 유지·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사용자들은 고용의 경직성에 직면하고 있는 사용자들보다 노동의 인간화에 대한 인센티브가 작을 수밖에 없다. 기업측이 '말썽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외부노동시장에서 노동조합활동에 무관심한 숙련 노동자를 채용함으로써 노사관계의 안정과 숙련 노동력에 대한 요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경우 굳이 권위주의적인 경영방식을 변화시키거나 교육훈련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비정규 노동력의 자유로운 활용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사용자들은 노동의 인간화를 통한 품질 제고보다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력을 이용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고용불안정은 노동자들의 인간화 요구를 가로막는 구실을 한다.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노동의 인간화가 '사치스러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 노동력 활용은 예를 들어 직무불만족도가 높은 작업을 외부화함으로써 정규직의 인간화 요구를 해소하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5. 맺음말


노동조합운동의 목표는 노동의 인간화라는 한 마디로 압축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노동의 인간화는 이 글에서 논의했던 것보다는 훨씬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온전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경제·사회적인 조건이 노동자들의 삶을 큰 틀에서 규정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경제제도의 변혁이 노동의 인간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인식은 일면적인 것이다. 오히려 정치·경제제도의 변혁을 노동의 인간화의 한 과정으로 위치지워야 하며, 이럴 때 노동조합운동이 안고 있는 과제를 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해결할 수 있고 정치·경제제도의 변혁도 앞당길 수 있다.
특히 현재 한국의 조건에서 노동의 인간화정책은 기업측의 경영합리화에 대한 당면한 대응책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업측이 현장통제력 회복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현장기반은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한 문제, 예를 들어 노동조합 간부들의 준비정도나 활동방식 등의 한계가 일정한 작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력도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성장·변화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결국 노동조합운동의 진전은 주·객관적인 여건 변화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확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작업장에서 기업측이 노동자들을 물질적·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하는 한편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조건에서 임금인상·단체협약 갱신투쟁 위주의 활동이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이것은 이미 우리 노동조합운동의 경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의 인간화를 구호로 내걸고 기업측의 전략에 대응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활동을 확대·발전시키며, 더 나아가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미래를 개척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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