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덫에 걸린 '6.15의 힘'

by 뚝배기 posted Jun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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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덫에 걸린 '6.15의 힘'

       (김근식/경남대 교수)

  올해 6.15 기념일은 여느 해에 비해 조용히 끝났다. 6.15 남북 공동행사에 정부 차원의 공식참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서울과 평양이 아닌 금강산에서 민간만 참여한 가운데 차분히 진행됐기 때문이리라.


 


  6자회담이 중단되던 2005년 상황에서도 6.15 공동행사는 열렸고 그것을 계기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7 면담이 성사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금년 6.15는 가장 가라앉은 분위기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8주년을 맞는 6.15가 이처럼 침체되어 있는 것은 단지 행사의 규모나 장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남북관계의 냉랭한 분위기 때문이다.


 


  6.15의 진정한 힘은 무엇이었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구조적 경색국면을 지속하고 있고, 남북이 충돌하는 최대 쟁점은 바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 차이이다.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인하는 데 진력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당연히 6.15를 계승하겠다는 말을 하기 힘들고, 이와 반대로 6.15를 조국통일의 최대장전으로 여기고 있는 북으로서는 이명박 정부를 수용하기 힘들다. 6.15에 대한 팽팽한 입장차가 남북관계 경색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6.15의 힘은 남북관계가 한반도 평화의 근본 토대라는 의미이다. 북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지속되었고 그 동력으로 북핵문제가 진전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6.15의 힘은 북미간의 극단적 대결상황에서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는 안전판이자 방호벽이었다. 6.15를 통해 남북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다면 2차 북핵 위기는 미국의 대북 강경과 북한의 대미 초강경이 맞부딪침으로써 극단적 위기로 진전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6.15의 힘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필요조건이었다. 정체되던 6자회담에 활력을 불어넣고 북미간에 의미있는 접점을 찾도록 한국이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남북관계의 힘이었다. 2005년 장기간 공전되던 6자회담을 재개시키고 급기야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낸 결정적 계기는 바로 남쪽의 특사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6.17 면담이었다. 남북관계의 동력이 멈춰있던 6자회담을 움직인 것이다.


  




  ■ 상호주의 원칙 1. 등가(等價)적 요구의 맞교환


 


  이처럼 매우 안정적이었던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 들어 장기간 경색되고 있는 것은 남북간 신뢰가 끊겼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정신적 신뢰의 가치였던 6.15 선언을 부인한 것, 실질적 신뢰의 끈이었던 대북 지원을 중단한 점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전임 정권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했던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책은 퍼주기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 강박관념 탓에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reciprocity) 관철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기계적 상호주의에 매달려 매년 이뤄졌던 대북 식량지원을 놓치고 만 이명박 정부는 지금에 와서 북에 쌀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이른바 상호주의는 국가간 통상 협상에서 일국이 양보한 만큼 그에 상응하게 타국도 양보를 해야 한다는 시장개방의 상호주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남북관계에서 대북 퍼주기의 반대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북한으로부터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얻어내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상대방이 무조건 수용해야만 상호주의가 아니며, 우리가 요구한 대로 상대방이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호주의가 관철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상호주의가 제대로 관철되기 위해서는 상호 '교환가능한 등가의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일방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상대방에겐 도저히 받기 힘든 것일 때, 즉 서로 교환이 불가능한 크기의 요구사항은 결코 상호주의를 내세워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게 된다.


 


  지금 겪고 있는 쇠고기 개방 논란에서도 보듯이 미국에게는 과학적 믿음에 근거한 당연한 요구가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괴리가 존재할 때 미국의 상호주의 요구는 한국에 결코 수용되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 대북 식량지원의 대가로 요구하는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의 진전은 북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쌀 4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의 대가로 북한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등가의 요구사항이었던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라고 하는 '비핵·개방·3000' 구상도 사실은 잘못된 상호주의이다. 북이 핵을 포기하고 체제의 개방을 선택하는 것과 남측이 북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쉽게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북에게 핵은 체제생존과 맞바꿀 만한 것이고 개방 역시 외부로부터의 안전보장과 체제유지의 자신감 없이는 쉽사리 채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 포기와 개방을 전제로, 혹은 그것을 조건으로 대규모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것은 처음부터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사항을 상호주의로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상적인 상호주의, 제대로 된 상호주의가 작동되려면 상대방이 수용 가능한 요구, 그리하여 상호 교환이 가능한 등가의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상호주의를 마치 우리 요구에 대한 북의 굴복으로 동일시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 상호주의 원칙 2. 신뢰


 


  다음으로 상호주의가 제대로 관철되려면 '협상 당사자간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협상의 상대방을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일방의 양보가 타방의 양보를 이끌어 낸다는 상호주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비하하거나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처사를 반복한다면 상호주의가 통용되기 힘들다.


 


  식량지원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의 교환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상호주의적 요구는 바로 북한의 선(先) 지원 요청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남측의 쌀 지원에 대한 상호주의적 대가보다는 북한의 자존심을 굴복시키기 위한 치졸한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쌀 지원의 상호주의라고 하기엔 하찮은 요구인 것이다.


 


  누가 봐도 상호주의적 요구사항도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렇다고 아무 조건 없이 북에 쌀을 주기엔 스스로 상호주의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선지원 요청이라는 황당한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등가의 교환사항을 요구하는 게 오히려 당당하고 일관된 모습이다. 상호주의의 요구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북한이 머리를 숙여야만 식량을 주겠다는 철부지 오기에 불과하다. 유치한 기싸움에 집착하는 상대에게 신뢰는 당연히 무너지게 되고 그 결과 상호주의 협상은 아예 시작도 하기 힘들게 된다.


  




  마지막으로 상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서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 예컨대 시장 개방을 놓고 양국이 어렵게 합의한 사항이 너무도 쉽게 포기된다면 어떻게 상호 등가의 이행교환을 상호주의로 약속할 수 있겠는가. 남과 북이 공식적으로 합의한 내용은 적어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상호간 믿음이 있어야만 서로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상호주의 협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가 합의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존중과 이행을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여전히 6.15와 10.4 합의를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다. 바로 얼마 전 합의한 사항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이제 와서 서로에게 동등한 의무 이행을 약속하는 상호주의 합의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스스로 합의 이행을 통한 신뢰를 무너뜨려 놓고 쌀지원의 대가로 북한의 상응한 양보를 요구한다면 북한으로선 이전 합의부터 지키라는 볼 멘 소리가 나옴직하다.


  




  이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상호주의를 고려하면 쌀지원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결코 상호주의의 온전한 요구나 행태가 아니다. 퍼주기를 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북한의 굴복을 상호주의의 관철로 착각하고 있는 잘못된 접근일 뿐이다.


 


  지금도 이명박 정부는 '의연한 태도'를 강조하면서 북한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주관적인 기대에 빠져 있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며 쉽사리 북에게 인센티브를 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북이 버티려고 하겠지만 결국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론은 올 여름 또 한 번의 수해가 나면 북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비인도적·비인간적 기대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상호주의는 결코 일방의 완전굴복이 아니다. 북한의 선양보와 선행동을 상호주의로 착각한 채 상호주의의 잘못된 관철을 남북관계 시작의 조건으로 본다면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상호주의는 결코 관철되지 못한다. 잘못된 상호주의를 남북관계의 전제로 삼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를 통해 실질적 상호주의를 관철시키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접근일 것이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남북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의 양보와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 다시 말해 대북포용과 화해협력의 6.15 정신이 장기적으로 북한에게 상호주의를 요구하고 관철하는 데서 훨씬 바람직한 접근인 것이다. 상호주의는 결코 말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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