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와 노동조합운동

by 뚝배기 posted Aug 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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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노동조합운동


 


민경우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원)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시위가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촛불시위는 7월 중순을 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각계각층에 지대하고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운동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촛불시위를 전체적으로 평가해 보고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성과와 한계, 과제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촛불시위는 네티즌의 자발성과 소통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이는 촛불시위가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이나 KBS와 같은 공중파, 한겨레·경향신문과 같은 진보개혁언론 등 기성 언론과는 구분되는, ‘인터넷’이라는 독자적인 여론 수렴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의 제도권 언론이 주입하는 일방향의 정보 대신에 무수한 토론과 정보 교환을 통해 집단적인 신념과 의지를 공유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터넷 공간을 뛰어넘어 거리로 진출하였다. 이들의 사회참여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촛불시위 공간은 일사 분란한 지휘와 통제 대신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열정이 어우러지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양상을 띠었다. 






촛불 정국의 노동운동, 87년 같은 ‘새로움’이 없다




이는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을 뿌리로 하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갖고 있던 전통적인 조직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시와 규율에 익숙해 있고 중층화된 의사구조와 위계적인 집행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촛불시위가 발전하면서 노동운동 대열 또한 자연스럽게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바로 이 점이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간의 중요한 차이이다. 6월항쟁의 경우 주로 대학생들이 주도하고 사무직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참여하면서 독특한 거리 문화를 창출했다면, 이어서 벌어진 7~9월 투쟁은 6월항쟁과는 또 다른 차원의 위력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필자는 6월항쟁 당시 대학교 4학년으로 단과대학 학생회장이었다. 6월항쟁 당시 대학생들이 주도했던 거리 시위가 지사적인 결단과 자유분방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면, 7~9월 노동운동은 질서정연하면서도 육중한 생산직 노동자 특유의 투박함과 무게감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1987년 8월 중하순 현대그룹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앞세우고 거리를 행진하던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만큼 당시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민주화운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시위 정국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있지만, 노동운동은 1987년 7~9월 노동자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촛불시위의 주동력은 대체로 대도시의 청년·중산층이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시위의 초기 국면이 주로 축제·자발성·비폭력과 같은 코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촛불시위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노동운동이 이명박 정부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노동운동 특유의 문화와 세계관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동운동은 1987년 7~9월을 뛰어 넘는 새로운 무언가를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






양극화가 만들어 낸 촛불의 주체




2003~07년 한국경제는 대체로 ‘수출호조-내수침체’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는 2001~05년 ‘미국의 과소비-중국의 외자·고정자산투자·저가공산품 수출’ 구조하에서 형성된 ‘고성장-저물가’ 체제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속에서 2003~07년 사이 한국의 중서민 대중은 두 세력으로 구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대도시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위 [표]에서 보듯 도시가구소득은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와 GDP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또한 2003~07년 기간 동안에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산층 중 일부는 자산소득 증가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중서민 대중 중 어려움에 처한 주요 집단은 20대 대학생, 도시 자영업자였을 것이다. 20대 대학생의 경우, 먼저 국공립대 등록금은 소비자 물가를 훨씬 뛰어 넘는 규모로 인상되었고 비슷한 기간 벌어진 등록금 투쟁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청년실업은 2004~05년을 경계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도시 자영업자의 경우 2002년 하반기 카드 대란 붕괴 이후 심각한 상태로 몰리고 있었다.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은 2002년 87.4조 원에서 2003년 79.7조 원으로 격감한 뒤 2007년에도 2002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중권력’ 상태 상당 기간 지속될 듯




또한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경제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세계적인 규모에서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수출호조-내수침체’ 중 수출이 다소 둔화되고 내수침체가 심화되는 가운데, ‘물가인상-자산거품 조정’ 양상이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 만능주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켰다.




이에 따라 2003~07년 노무현 정권 시절 줄곧 관망(?)하고 있던 대도시 청년·중산층들은 빠른 속도로 급진화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의 이슈는 미국산 쇠고기였지만 근본에는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친미·친기득권 정책에 대한 반대가 깔려 있었다. 




5월2일부터 6월10일까지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단위는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10대 청소년, 주부, 30~40대 사무직, 20대 후반의 비정규직 청년이었는데, 촛불시위의 코드가 비폭력·축제로 표현되고 대운하 반대, 의료민영화, 방송공공성 등이 주 의제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월10일 촛불시위가 정점에 이른 이후 이명박 정부는 김종훈 통상본부장을 미국에 파견하여 ‘민간자율-정부보증’을 통해 여론을 적당히 호도하고 우여곡절을 거쳐 강경기조로 돌아섰다. 반면 촛불시위는 6월10일 이후에도 여전히 완강히 거리를 메우고 있다. 이런 양상이라면 상당 기간 제도권 정치와 거리 정치가 대립하는 일종의 ‘이중권력’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도시 중산층 넘어 기층 민중 요구와 결합해야




촛불시위의 성과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기득권 중심의 성장지상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중대한 파열구를 내고 직접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이다. 




고환율저금리, 대운하 등 조악한 성장지상주의 정책은 촛불시위 과정에서 파산했으며, 이명박 정부는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던 전기·가스·물·건강보험 민영화를 일단 중단하였다. 이 중 의료 민영화에 타격을 가한 것은 이후 운동 발전에서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민주주의의 심화를 강조하고 있는 점은 향후 정세 발전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반면 한계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대기업과 한미FTA, 금산분리, 금융공기업 민영화 등 보다 근본적인 쟁점에 대한 저항 강도가 약한 점, △기층 민중의 경제적 요구가 희석된 점이다. 특히 법정 최저임금이 6.1% 인상에 그친 점, 자영업자와 대형마트 규제, 고용 및 청년실업 문제, 중소기업과 원자재-납품가 연동제,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 보다 근본적인 요구들이 제출되지 않은 점은 촛불시위의 중대한 한계로 보인다.




한편 6월 13~20일 화물연대의 싸움은 운임 19% 인상과 표준요율제 시범실시라는 중요한 성과를 얻으며 마무리되었다. 이는 ‘촛불시위-화물연대-민주노총-20대 대학생’으로 연계고리가 확산되는 데에 대한 집권층의 위기감을 잘 보여준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촛불시위가 상승발전하기 위해서는 대도시 청년·중산층의 요구를 뛰어넘어,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적인 측면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층 민중의 요구와 결합해야 함을 의미한다. 




노동운동, 촛불 정치세력화에 단호하게 참여하라




아마도 2010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이명박 정부와 촛불시위는 한편이 다른 한편을 압도적으로 굴복시키지 못하는 가운데 지구전 양상을 띠며 발전해 갈 것이다.




이와 동시에 양자 모두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모색에 들어갈 것이다. 최근 보수집권층 일부에서 개헌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나름대로 정국을 주도하려는 모색의 산물이다. 촛불대오 또한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할 정치적 주체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이 촛불시위와 합류하지 못한다면 촛불대오는 아마도 노동운동은 물론 진보진영 대다수를 주변화시키며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시도할 것이다.




6월10일 서울시청 일대에는 수십만의 군중이 운집했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벌어진 양상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역사적인 사건에서 자신의 이해와 세계관을 심지 못하는 집단은 이후 권력 재편 과정에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계승하여 노동자들이 7~9월 노동자 투쟁을 주도했던 것이 이후 민주화와 노동운동 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은 보다 적극적이고 단호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월간 노동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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