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의 의의와 성과:
서해에서 백두산까지 일상생활에서 맛보게 될 남북 관계의 변화
- 이 재 봉(원광대 교수, “남이랑북이랑” 발간)
기대가 컸었는데 성과는 더 컸다. “가져갔던 보자기가 작아서 짐을 다 싸기 어려울 만큼 성과가 좋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화자찬이 손톱만큼도 얄밉지 않다. ‘노빠’라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노대통령에게 만세를 부르고 싶고, 국가보안법에 걸리더라도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고 싶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정략적’이라는 의혹과 비난이 많이 쏟아졌다. 한나라당과 이른바 ‘조중동’은 작년부터 ‘정략적’이라며 반대해왔는데, 대통령 선거를 두어 달 앞둔 때였으니 오죽했겠는가. 나 역시 정상회담이 정략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여당의원이든 야당의원이든,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정치인의 언행에 정략적이지 않은 게 있을까. 대통령과 친여 세력이 정상회담을 추진하거나 지지한 것도 정략적이요,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세력이 회담을 반대하거나 연기하라고 주장한 것도 정략적이지 않았는가. 따라서 회담이 정략적일지라도, 불법적이고 부도덕적이지 않는 한,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분쟁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며 평화와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대통령 선거가 언제 실시되든 임기가 언제 끝나든 남북 사이의 만남을 자주 가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남북이 자주 만날수록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은 조금씩 넓어질 것이요 문턱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언론 매체들이 자세히 보도하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설과 전망을 내놓는 가운데 여러 단체들이 경쟁하듯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무슨 별다른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직접 보고듣거나 겪은 일을 바탕으로 우리 보통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맛보게 될 정상회담의 성과 두 가지만 곁들이고 싶다.
(1) 서해 공동 어로 구역에 관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4일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결과를 보고하면서 정상회담의 가장 크고 핵심적인 성과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만들기로 합의한 것을 꼽았다. 1999년과 2002년 남북 사이에 무력 충돌이 두 번이나 일어나는 등 말썽 많은 서해에 공동 어로 구역과 평화 수역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두 손 두 발 다 들어 환영한다.
나는 1999년 6월 이른바 제 1차 서해교전에 충격을 받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북 사이의 전쟁은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그 때 20여명의 북녘 군인들이 죽는 ‘교전’으로 끝났기 망정이지 만약 대규모 전투나 전면전으로 치달았으면 얼마나 끔찍했겠는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보듯, 현대 전쟁에서는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이 훨씬 더 많이 죽는다. 전쟁을 부추기거나 호전적인 사람들만 죽는 게 아니라 평화를 바라거나 무고한 사람들도 죽는다. 남북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휴전선 근처의 강원도와 경기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도 죽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가능성을 1%라도 줄이며 남과 북이 더불어 살자는 취지로 평화 통일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3년 뒤 2002년엔 5-6명의 남쪽 군인들이 죽는 두 번째 교전이 일어나는 등 남북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가시지 않아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가장 큰 서해에 평화 수역을 만들겠다니 이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나는 2004년 5월 국정원 초청으로 백령도를 방문했다. 그 해 6월호 ??남이랑북이랑??에 썼듯이, 인천에서 배를 타고 5시간이나 걸리는 남한 최북단에 자리잡은 섬으로 북녘의 장산곶이 자리잡은 용연반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 해병대 고지에 오르니 백령도와 용연반도 사이 저 멀리로 수백 척의 중국 어선이 떼지어 있는 게 보였다. 낮에는 공해에 머무르고 있다가 밤이 되면 북방한계선 (NLL)을 타고 침입해 들어와 고기를 잡는단다. 북쪽에서 경비정이 나오면 남쪽으로 피하고 남쪽에서 경비정이 나가면 북쪽으로 피하면서 지그재그로 서해의 황금 어장을 싹쓸이한다는 것이다. 안보상 매우 민감한 북방한계선 근처여서 남북의 어선들은 얼씬도 못하고 경비정도 조심스럽게 다닐 수밖에 없는 수역을 중국 어선들이 휘젓고 다니며 서해의 명물이라는 꽃게 씨까지 말려버린다니 얼마나 분통터질 일인가.
일주일 뒤 친분이 있는 평양 관리를 베이징에서 만나 위와 같은 기막힌 사연을 전했다. 남북 당국이 북방한계선에 관해 건설적으로 생각해서 양쪽 어민들이 사이 좋게 고기와 꽃게를 잡을 수 있는 공동 어장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덧붙였다. 그도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평양에 돌아가자마자 ‘상부’에 꼭 보고하여 바람직한 조치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했다. 몇 달 뒤 다시 만난 그는 나의 제안을 ‘장군님’ (김정일 국방위원장)께 보고드렸다면서 곧 좋은 해결책이 나올 거라고 알려줬다.
작년 8월 남이랑북이랑 운영위원 및 평생회원들과 두 번째로 백령도를 방문했을 때는 중국의 어선들이 이전처럼 많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안내한 해병대 장교에게 이유를 묻자 남북의 단속이 심해진 탓도 있고 꽃게 씨가 말라버린 탓도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남북이 북방한계선을 두고 서로 대치하는 바람에 중국 어선들이 우리 영해에 불법으로 들어와 고기 잡는 것을 우리 어민들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서해 북방한계선 주위에 공동 어로 구역을 만들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북방한계선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비난을 일삼고 있으니 도대체 이들이 주장하는 안보는 무엇을 위한 것이고 이들이 지향하는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기가 막힌다. 이에 북방한계선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니 참고하기 바란다.
- 북방한계선은 남한 해군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미군이 그은 경계선-
북방한계선이란 휴전 (정전) 이후 미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은 선으로 휴전선도 아니고 영토 (영해) 개념의 해상 경계선도 아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 대통령은 휴전에 반대하며 무력 북진 통일을 주장했는데, 휴전선 (군사분계선)이 육지에서는 그어졌지만 바다에서는 그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상을 통한 남한군의 북침을 막기 위해 설정한 것이 북방한계선이다. 북한 해군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경계선이 아니라, 남한 해군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경계선이라는 뜻이다.
1950년대에 휴전에 반대하며 북진 통일을 주장하는 ‘호전적인’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은 아주 ‘골칫거리’로 여겼다. 오죽하면 휴전 협상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50년대 중반까지도 이 대통령을 감금하거나 몰아내고 새로운 지도자를 내세우려는 작전을 구상했겠는가. 남북의 경계선이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바뀌면서 남쪽은 연천이나 속초 등 경기도와 강원도 남부 지역을 빼앗고 북쪽은 개성과 옹진 등 황해도 남부 지역을 빼앗은 셈이 되었는데, 이승만은 특히 개성과 옹진을 탈환하는 데 몹시 집착했다. 여기엔 그의 고향이 황해도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55년 미국의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육군이 개성-옹진 지역을 침략하여 탈환하지 않으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정일권 육군참모총장 사이에 “격렬한 싸움 (dreadful fight)”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형근 합참의장 역시 이 대통령에게 개성-옹진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얘기했다. 대통령은 헌법상 군통수권을 가진 반면 주한미군 (유엔군) 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실질적인 작전통제권을 가진 터에, 북침을 촉구하는 대통령과 북침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군 사이에서 한국군 지도자들은 ‘항상’ 미군에 ‘충성’하는 길을 택하였다.
1950년대 중반 미국 국가안보위원회 (NSC)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남한 육군은 북한보다 거의 2배나 병력이 많았고 장비와 무기도 뛰어났으며, 남한 해군은 북한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훨씬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군은 휴전협정을 무효화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선동과 도발을 일삼으며 개성과 옹진반도의 반환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이 북방한계선을 그은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북방한계선이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해상경계선처럼 되었다. 남한군의 북진을 통제하기 위해 그어진 선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취지와 성격이 변해버린 것이다. 한반도 지도에 잘 드러나 있듯이, 서해 5도는 남쪽의 인천이나 강화도에서는 한참 떨어져있는 반면 북쪽의 용연반도와 옹진반도와는 거기에 딸린 섬처럼 가깝다. 따라서 북녘에서는 용연반도 및 옹진반도와 서해 5도 사이에 그어진 북방한계선이 북녘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며 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반발하는 바람에 긴장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쪽이 북방한계선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고 경비를 강화하며 갈등과 분쟁의 씨앗을 키우는 것과 북녘에 조금 양보하더라도 협상과 조정을 통해 긴장을 낮추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안보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북방한계선을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 주변 해역에 남쪽의 어부들까지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중국 어선들에게 황금 어장을 내주는 게 진정한 평화인가, 아니면 분쟁 수역을 남북 공동 어로 구역으로 만들어 양쪽 어민들이 마음놓고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게 실질적이고 진정한 평화인가 따져보기 바란다.
(2) 백두산 관광에 관하여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과 북이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서울-백두산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합의하였다. 귀가 솔깃해지는 대목이다. 아내로부터 역마살이 끼었냐는 말을 들을 만큼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며, 여행을 통해 통일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통일 운동이라면 딱딱한 말이나 거친 행동 또는 과격한 이념이나 폭력 데모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부드럽고 재미있게 통일 운동을 해보자는 뜻에서 평양이나 개성 그리고 금강산 여행을 안내하거나 주선해 왔는데 앞으로는 백두산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나는 2003년 10월 처음으로 북녘의 백두산에 올랐다. 평양에서 백두고원 (개마고원)의 삼지연공항까지 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비행장에서 백두산까지 1시간 정도 버스를 탔다. 매서운 눈보라 때문에 등산도 제대로 못하고 천지 구경도 못했지만 뿌듯했다. 그 때 일행 가운데는 연변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무려 40번이나 천지에 올랐지만 단 한 번이라도 평양을 거쳐 백두산을 밟아보려고 방북한 목사가 있었다. 경비를 마련하려고 5일에 한번씩 쉬는 날을 한달 전부터 반납하며 택시를 몰았다는 특이한 목사였다. 이런 심정으로 백두산에 오르려는 남쪽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작년 6월엔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의 창바이산 (長白山)이지 북녘의 백두산이 아니다. 창바이산은 2002년 중국에서 10대 명산으로 뽑혔다지만, 이곳을 찾는 등산객이나 관광객은 대부분 한국인들이다. 나는 압록강-백두산-두만강으로 이어지는 북중 접경 지역을 답사하는 길에 남이랑북이랑 회원들과 경비를 줄이기 위해 남한에서 중국까지 뱃길을 이용했지만, 많은 관광객들은 인천에서 옌지 (延吉)까지 2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옌지에서 창바이산까지 7-8시간 버스를 타고 간다.
한국쪽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약 10만명이 천지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중국을 거쳐 창바이산에 오른다고 한다. 1인당 평균 50만원씩만 잡아도 매년 최소한 5백억원의 백두산 관광 경비가 남북의 갈등 때문에 북녘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국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참고로, 창바이산 간판뿐만 아니라 주변의 호텔이나 식당 간판에도 한글 (조선글)이 더 크게 쓰여져 있는데, 그렇다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한족은 대규모 호텔이나 식당을 소유하고, 조선족은 거기에 딸린 노래방이나 술집 또는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 내년부터 중국을 거치지 않고 북녘을 통해 창바이산이 아닌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서 백두고원의 삼지연공항까지 2시간 정도 걸릴테니 백두산까지 중국을 통해서는 9-10시간 걸리던 게 3시간 안팎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경비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비싸더라도, 북녘 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가지면 별로 아깝지 않으리라.
이렇듯 앞으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맛보게 될 것이다. 서해 어민들의 자유로운 고기잡이와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백두산 관광을 위해서라도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끝>